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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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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코로나 시대의 극장가는 혼란스럽다. 신작은 머뭇거리고, 재개봉작이 대거 등장하며, 늦은 개봉을 하는 작품들도 있다. 그리고 예전처럼 몇몇 영화들은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한다. 이러한 카오스 상태 속에서 종종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작품들이 관심 밖에서 누락된다. 지난주에 개봉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3개의 얼굴들’(2018)이 그렇다.

영화가 시작되면 길쭉한 세로 화면이 등장한다. 그 안엔 마르지예라는 여성이 있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마르지예는 배우가 되고 싶지만 가족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 차라리 죽겠다는 마르지예는 목을 매고, 이후 카메라는 심하게 흔들린다. 과연 그는 자살한 것일까? 이 동영상은 배우인 베흐나즈 자파리에게 전달되고, 촬영장에서 뛰쳐나온 그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과 함께 마르지예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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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얼굴들’은 충격적인 오프닝과는 달리 유머와 여유와 서정이 깃든 영화다. 하지만 그 안엔 지역민들의 척박한 삶과 이란에서의 여성 인권 같은 현실적 테마가 비수처럼 깃들어 있다. 여기서 마르지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소환된 배우 자파리와 감독 파나히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는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치장 없이 소박하면서도, 풍성하게 감정을 울리는 ‘3개의 얼굴들’.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길 소망해본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