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 감기약 정말 위험한가] "뇌졸중 가능성 있지만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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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닐프로판올아민(PPA) 함유 감기약이 판매 금지된 이후에도 그 유해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PPA 함유 감기약을 사먹은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과 불안은 역학조사와 임상시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임상시험은 신약의 시판을 허용하기 전에 안전성과 약효를 검증하는 절차다. 나이.성별.경제력 등 조건이 비슷한 환자와 정상인에게 신약과 가짜약을 각각 투약한 뒤 그 차이를 본다. 정확한 투약과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므로 결과에 대한 시비가 거의 없다.


반면 역학조사는 일정 집단을 선정한 뒤 그들의 약물 복용 기억에 의존해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된다. 피조사자들의 기억이 틀릴 수 있는 데다 이번처럼 PPA 외에 다른 요인이 뇌출혈의 위험을 높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만으로 "PPA 성분이 든 감기약이 뇌출혈을 일으킨다"고 딱부러지게 말할 학자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 역학조사 결과만으로 유해성이 인정된 것은 담배뿐이다.

국내에서 PPA와 뇌졸중 위험성과의 상관관계 연구에 관련된 전문가들은 "PPA가 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위험성이 실제보다 과장돼 알려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의대 윤병우 교수는 "PPA가 뇌졸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실제 위험성보다 더 부풀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보고서의 해석 작업에 참여한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과장은 "PPA와 뇌졸중의 관계가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PPA를 함유한 감기약의 효능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해 사용 중지 조치를 내리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1991~2000년 멕시코에서 실시된 역학조사에선 PPA 복용과 뇌출혈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뇌졸중 전문학술지 '스트로크' 35호에 실린 논문도 18~49세 남녀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한 결과 "PPA 복용과 뇌출혈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연구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역학조사만으로 PPA와 뇌출혈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동덕여대 장창곡(보건관리학) 교수도 "국민건강 차원에서 남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판매 금지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떠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에선 PPA보다 오히려 흡연.고혈압.카페인 등이 뇌출혈 발생 위험을 각각 3.7배, 2.2배, 2.5배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PPA에 과민 반응하기보다 금연, 혈압 관리, 카페인 섭취 제한 등이 더 효과적으로 뇌졸중을 예방하는 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PPA 함유 감기약은 시장에서 이미 퇴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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