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진단 DNA칩 허가에 2년반

중앙일보

입력

"지난 2년 반 동안 18번이나 거부됐던 일이 중앙일보에 우리 회사 사례가 기사화된 뒤 불과 열흘 만에 해결됐습니다."

국내 최초로 자궁경부암 진단용 DNA칩 시판 허가를 받아낸 성균관대 의대 한인권(51.삼성제일병원 내과)교수. 10년 묵은 체증이 후련히 풀렸다는 표정이지만 한편으론 "뒷맛이 아직도 씁쓸하다"고 한다. 그가 창업 멤버로 참여한 바이오벤처 마이진이 지난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DNA칩 허가를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동안의 심사과정이 '진을 다 빼놓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BT)산업의 활성화를 막는 정부의 지루한 인허가 과정을 다룬 중앙일보의 기획 기사('의료, 이제는 산업이다') 덕을 봤습니다. 그 기사가 아니었으면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회사가 먼저 쓰러질 뻔했습니다. 전 재산과 안정된 교수직까지 걸고 만든 건데…."

그가 개발한 DNA칩은 유리판에 피 몇방울만 떨어뜨리면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체 유두종 바이러스(HPV, 성생활을 통해 전파)의 감염 여부를 단 몇분 만에 판정해 준다. '대박'을 꿈꿀 만한 상품이다. 성생활을 하는 모든 여성(국내에만 1800만명 추산)이 잠재적인 수요자이기 때문이다. 칩 개발에 들어가자 20여명의 직원이 오전 2시까지 회사에 남아 연구에 몰두할 만큼 의욕이 대단했다. 그러나 공이 식의약청으로 넘어가면서 모든 것이 '만만디'로 바뀌고 말았다고 한다.

"식의약청의 어느 과에서 인허가를 담당할 것인가를 놓고 6개월을 허송세월하더군요.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시간이 자꾸 흘렀습니다.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면 인허가 작업은 또 표류했습니다."

개발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행정의 벽'에 부닥친 것이다. 인허가가 계속 지연되면서 직원들의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늦어도 2003년 안엔 제품이 나온다"며 본의 아니게 매달 '공수표'를 남발하자 회사의 신용도 덩달아 떨어졌다.

"식의약청이 인허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했다면 칩의 출시 시기를 적어도 1년은 앞당길 수 있었을 겁니다. 웬만한 바이오벤처의 존망을 결정하고도 남는 시간이지요." 인허가의 속도를 높이려면 식의약청에 전문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도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 교수는 강조한다.

"인허가 서류를 제출하고 1주일쯤 뒤에 식의약청에 가면 '전날 밤을 새웠다, 너무 어렵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첨단 바이오 제품을 인허가하면서 그때부터 관련 지식을 습득하느라 주경야독하는 것은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자신이 없으면 계속 쥐고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미국에선 바이오 제품의 인허가와 관련해 전문가가 검토했다면 그 결과에 승복합니다." 그는 "(식의약청을) 너무 자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 "요즘은 협조가 잘 된다"고 덧붙였다.

"지침 거의 없어 어려움" 식의약청 평가 담당자

평가업무를 맡았던 민홍기 식의약청 생물의약품평가부장은 "DNA칩 등 생명공학 제품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첨단 제품이어서 안전성.유효성 평가를 위한 지침이 거의 없다"며 "한정된 인력으로 이를 해낸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식의약청 관계자는 "어려운 여건에서 새로운 평가 가이드 라인을 만들기 위해 5개 부서의 전문가로 태스크 포스팀을 만드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