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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중환자 없는 게 다행

중앙일보

입력

"파업 이후 집에 하루도 못 들어갔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10일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이후 병원에서 24시간 대기근무를 하고 있는 고려대 안암병원의 한 수간호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병원 소아과 병동의 경우 평소엔 12명이 3교대로 근무했지만 현재는 간호사 3명과 시간제 간호사 2명이 2교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나마 수간호사는 퇴근하지 못하고 밤새 파업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병원 파업이 엿새째 계속되면서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응급실 등 필수업무는 그런대로 돌아가지만 수술환자의 경우 예약이 취소되고 외래환자는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환자 피해 커져
고대 안암병원의 경우 수술실과 마취과는 직원 50명 가운데 34명이 파업에 참여해 수술이 하루 40~50건에서 10~20건으로 크게 줄었다.

영양실과 식당 근무자의 파업으로 15일 아침부터는 당뇨환자 등 치료식이 필요한 환자를 제외한 일반 환자들에게 도시락이 제공되고 있다.

한양대병원도 평소 40여건이던 수술이 14일 32건, 15일 31건으로 20% 정도 줄었다. 외래환자도 평소 하루 평균 2300여명에서 14일엔 1800여명으로 급감했다. 병원 측은 파업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자 아예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모자라 의사가 환자의 휠체어를 미는가 하면 행정 직원이 환자의 차트를 들고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때문에 외래환자들의 불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X-선 검사를 한 뒤 진료를 봐야 하는 정형외과의 경우 평상시보다 2시간 정도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이 병원 외래 간호사는 "평소 3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화장실 가기도 힘들다. 식당에 갈 시간이 없어 김밥 등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한 환자는 "병원 파업 때 집안에 중환자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불편한 병원 서비스를 꼬집었다.

서울대병원도 하루 평균 110~120명이던 수술 환자 수가 15일엔 53명에 그쳤다. 수술실 간호사가 평소 70명에서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아주대의료원의 경우 외래환자가 진료예약을 했으나 병원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취소하는 비율이 25%에 이른다. 이대목동병원은 간호조무사 상당수가 이탈해 진료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노사 의견 접근 조짐
15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실무교섭은 이전과 달리 노사간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주 5일제를 실시하되 연월차휴가 축소와 생리휴가 폐지 등 정부의 법 개정 취지에 맞춰 임단협을 바꾸자는 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사측이 주5일제 실시 여부는 노사 자율에 맡긴다는 단서조항을 요구해 노조가 거부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병원 노사는 토요일 휴무를 원칙으로 하되 국립대병원.공공병원.사립대병원.민간중소병원 등 병원 사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주 5일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한편 노조는 15일 오후 6시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전날 교섭 타결을 전제로 풀었던 병원 로비 점거농성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정부가 나서 주5일제 실시에 따른 병원 손실을 보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노조 주장대로 토요일 휴무제를 실시할 경우 수입은 줄고 인건비는 늘어날 텐데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느냐. 보건복지부가 나서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줘야 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간 병원 도산율이 10%에 이르는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줄도산'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립대 병원협회는 건강보험수가 5~8.8% 인상과 토요일 오전 휴일 가산제 시행, 응급의료수가 보전 등을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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