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이제는 산업이다] 국내선 병원에 "안 된다" "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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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균(金判均.76.전남 무안군 해제면 광산2리)씨는 지난 3월 30일 오전 8시50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읍내 인근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버스를 타고 해제면 터미널에 도착했다. 5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무안읍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거기서 또 10분을 기다리다 세번째 버스에 올랐다.

병원 현관의 시계가 벌써 11시를 가리킨다. 오른쪽 무릎은 더 쑤시고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金씨가 같은 코스로 귀가했을 땐 오후 3시가 돼 있다. 길에서 다섯시간가량을 보낸 것이다. 차비도 6000원 들었다.

金씨는 "병원 버스가 다닐 때는 30분도 안 걸렸고 차비도 안 들었다"고 말했다. 金씨의 병원 가는 길이 고행길이 된 이유는 정부가 지난해 3월 병원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병원들이 환자를 유인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는 대도시와 달리 농어촌의 사정은 다른데도 모두 무시됐다.

이처럼 사소하게 보이는 규제가 결과적으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의료기관에 가해지고 있는 규제는 의료법 101가지, 약사법 6가지, 건강보험법 24가지, 도시교통정비촉진법 2가지 등 34개 법규에 모두 261가지다(대한병원협회). 물론 이 중엔 환자비밀 누설 금지 등 꼭 필요한 규제도 있다. 하지만 상식에 반하는 것도 수두룩하다는 게 병원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최근 몇 년 새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지만 보건의료 분야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최근 개원한 경기도 부천시 다니엘종합병원은 계획에도 없던 내과.일반외과.소아과를 개설해야 했다. 이 병원은 인근 내과의원 등이 자기 환자를 데려와 입원실.수술실 등에서 진료하는 개방형 병원을 시도했다. 하지만 내과.외과.소아과 등 7개 이상의 진료과를 둬야 종합병원이 된다는 규정에 걸렸다. 그뿐인가. 의료기관의 광고에도 규제가 가해진다. 의사 이름이나 진료과목.전화번호 등 10여가지만 광고할 수 있다. 환자들은 정보가 없어 병원을 찾아 헤맨다. 또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동시에 갖고 있으면 한개는 포기해야 한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규제는 의료의 효율성이나 의료기술 발전, 서비스의 질을 하향 평준화시킨다"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의료 서비스 평가에서 우리가 33위에 그친 이유도 바로 과도한 규제 탓이라는 얘기다.

특별취재팀=신성식.정철근.이승녕.권근영 기자, 오병상 런던 특파원,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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