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거래" 제약사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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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병원에 직접 약품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44개 제약회사가 무더기로 제재를 받게 됐다.

현행 약사법은 제약사가 병원에 약품을 공급하려면 반드시 중간에 도매상을 통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D.J제약 등 44개 업체가 300여개 품목의 약품을 직접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행정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고 16일 밝혔다. 제약사가 이 같은 혐의로 처벌받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제약사의 직접 납품을 금지한 규정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돼온 터라 이 같은 조치에 논란이 일고 있다.

◇왜 직접 납품 막나
현행 약사법 시행규칙은 '제약회사는 종합병원에 약품을 공급할 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도매업자를 통해 공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문제가 된 약품에 대해 1개월 제조정지 처분을 받는다.

제약사는 생산과 연구개발에만 전념하고 유통은 도매회사에 맡겨 의약품 유통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에서 1994년 만들어진 규정이다. 직접 납품할 경우 제약사 간에 과당경쟁으로 리베이트 등의 뒷거래가 성행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도 있었다.

이에 근거해 복지부는 지난해 말 약품거래 가격실태를 조사하던 중 이들 제약사가 서울 C병원과 전남 M병원 등 종합병원 네 곳에 직접 약품을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다. 그동안 복지부는 본격적인 단속을 하지 않았다. 이번 약가조사 과정에서 위반업체가 많이 나오자 제재키로 한 것이다.

◇시장원리냐 법대로냐
직접납품 금지 규정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또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규모 도매회사가 난립하면서 유통 전문화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의약분업 이후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한 두 개 품목만 취급하는 도매상을 대거 차리면서 유통질서가 문란해지자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아왔다. 일부 병원은 대리인을 내세워 도매상을 차린 뒤 약품을 납품받을 정도로 편법이 성행하기도 한다.

D제약 관계자는 "병원에 직접 납품하든 아니면 도매회사에 맡기든 판단은 기업의 몫인데 그 방법을 정부에서 강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초 자유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법대로 제재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약회사들이 실정법을 어긴 사실을 적발하고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에 규정대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의약품도매협회도 약품을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 유통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직접납품 금지 조항을 없애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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