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읽기] 여보, 난 아이가 아니야

중앙일보

입력

아내는 왜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일까.

내로라하는 직장에서 능력있는 재주꾼으로 인정받는 Y씨(47). 17년 전 직장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해 살고 있다. 그는 누가 봐도 집안에서 아내의 신뢰와 사랑을 듬뿍 받는 가장인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아내는 모든 집안일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들고 그동안 그렇게 해 왔다. 세간살이 장만은 물론 차종을 선택하고 이사할 집을 결정하는 것도 늘 아내 몫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Y씨 생각과 반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늘 "당신이 사정을 몰라 그런 소리를 한다, 내가 다 알아보고 하는 말이니 군소리 하지 마라"며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시켰다. 이런 아내의 소신(?)은 옳았던 적이 많다. 예컨대 집만 해도 Y씨는 강남의 헌 아파트보다 강북의 넓은 집에 살기를 원했다. 반면 아내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강남에 꼭 살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과는 강남 집값이 큰 폭으로 오름에 따라 아내의 승리로 결정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내는 "우리가 이 정도 사는 것은 당신이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내가 잘 굴려서…"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 Y씨도 아내의 말을 상당 부분 인정한다. 사실 자신이 일터에서 유능한 사람이지 살림이나 일상생활에서 발빠른 대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아내가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Y씨 의견을 무시하려 드는 데 있다. 자녀 문제만 해도 자신이 낄 여백이 없다. 지난 겨울 아내는 기대만큼 성적이 안 오르는 고등학생 큰 아들을 유학 보내기로 결정해 버렸다. 물론 Y씨는 반대다. 청소년은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게 가장 좋으며 유학간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싼 유학비도 부담이다. 하지만 아내는"남들보다 앞서려면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며 Y씨의 의견을 일축해 버렸다.

아내의 주장은 Y씨 옷을 살 때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Y씨는 아내와 다투는 일이 귀찮기도 해 늘 자신보다 아내의 마음에 드는 옷을 샀던 것 같다. 물론 Y씨도 역정을 낼 때가 있는데 아내는 언제나 "왜 내 말을 안 듣느냐"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내는 말투부터 자신을 큰아들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내와 큰 갈등 없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을까.

먼저 Y씨는 결혼 초부터 상당기간 집안의 대소사를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오랜 세월 매사 혼자 결정해 온 아내의 눈엔 일상생활 정보가 어두워 보이는 남편이 불쑥불쑥 내놓는 의견이 미숙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자칫 자녀 대하듯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아내와 집안 일에 대해 좀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슨 일이건 상황 파악이 정확해야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말에 권위도 서게 마련이다.

또 '성인(成人)'인 나와 아내가 각자 혼자 결정할 일, 함께 의논해야 할 일을 스스로 정리한 뒤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이 입고 싶으면 혼자 쇼핑한 뒤 "내 옷은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처음엔 변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가 언짢아 하며 잔소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Y씨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도 함께 지내야 할 세월이 많은데 언제까지나 아내에게 미성년자 취급을 받으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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