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두손 잘렸던 재미동포 정우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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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저는 잃었던 양손을 되찾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젠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차례입니다."

어려서 사고로 두 손을 모두 잃었던 한 재미동포 청년이 정교한 손기술이 필요한 정형외과 의사로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뉴욕 컬럼비아 장로교 메디컬센터 정형외과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정우식(28)씨. 미국 ABC-TV 인터넷판은 지난 8일(현지시간) 정씨를 '기적의 손'이라고 소개했다.

방송에 따르면 정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세살 때. 경기도 의정부시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그는 트랙터 엔진의 환기팬을 만지다 양 손목이 모두 절단됐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정씨는 운이 좋았다.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미국명 존 정)가 사고 장면을 목격했던 것. 정씨는 간호사였던 아내에게 잘린 아들의 두 손을 얼음에 담그게 한 뒤 이를 들고 근처 병원을 향해 아들을 들쳐업고 뛰었다.

그런데 어렵게 도착한 병원에선 또 한번의 어려움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국경일이어서 전문의가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정씨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위해 수술복을 입었다. 아들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저를 내려다 보시면서 신중하게 수술을 진행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선 정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셨고 덕분에 수술은 성공했죠."

아버지가 난생 처음 해본 접합수술이었지만 정씨의 말처럼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사고가 있은 지 2년 만에 정씨가 양손의 기능을 모두 회복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기적이 저절로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 기간에 정씨는 사범이었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하루도 쉬지 않고 태권도를 익혔다. 일종의 물리치료였던 셈. 정씨는 "태권도가 손목의 유연성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할아버지께선 저에게 특히 손목을 자주 쓰도록 하셨죠"라고 말했다.

정씨는 14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갔다. 양 손목의 흉터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당하기도 했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고 밝은 성격을 유지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해 명문 예일대에 입학한 정씨는 이곳에서 태권도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뉴저지주에 있는 뉴아크 의대를 졸업한 정씨는 현재 레지던트 1년차. 아직 복잡한 수술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선배들로부터 "장래가 촉망받는 의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언젠가는 내가 받았던 것 만큼 까다로운 접합수술을 집도하는 정형외과 수술 전문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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