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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줄게" 합의 안되자···슈퍼주인까지 꼬드긴 을왕리 동승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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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벤츠 차량에 치킨 배달 도중 치어 숨진 50대 가장. 사진은 지난 9월 9일 오전 당시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벤츠 차량에 치킨 배달 도중 치어 숨진 50대 가장. 사진은 지난 9월 9일 오전 당시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술에 취한 운전자가 차량으로 치어 숨지게 한 사건과 관련해 당시 차량 동승자가 유족의 집을 찾아가 거액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합의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동승자 측이 집 근처에 반복해 나타나자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 안주영 변호사는 7일 오후 인천 중부경찰서에 유족의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위험운전치사) 및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47·남) 측이 최근 유족의 자택을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피해자 지인에게 합의를 주선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면서다.

안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초 유족 측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을 해 합의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얼마 후 유족을 직접 찾아갔다. A씨와 손해사정사 등 남성 3명은 유족에게 "직접 사죄드리러 왔다"면서 "피해자 측 변호사가 3억원 정도를 얘기했다는데 우리는 6억원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이 합의를 거부하자 A씨 측은 이달 초 피해자 집 근처에 있는 슈퍼 주인을 찾아갔다. 이 슈퍼 주인이 피해자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안 A씨 측은 "유족이 만나 주지 않아 답답해서 왔다"며 "유족과 다리를 놔주면 일정 금액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안 변호사는 "A씨 측은 슈퍼 주인 역시 자신들의 부탁을 거절하자 당일 밤 유족의 집으로 가 현관문을 두드렸다"며 "합의 안하겠다고 했는데 집까지 찾아오니 유족들이 무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난 9월 9일 0시 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B씨(34·여)와 같은 차량에 타고 있던 당사자다. B씨는 술에 취해 벤츠 승용차를 400m가량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을 배달하러 가던 C씨(54·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A씨는 앞서 B씨에게도 "합의금을 대신 내줄테니 자신이 입건되지 않도록 진술해달라"고 회유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는 음주운전을 시키지 않았으며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놓고 뒤에서 돈으로 무마하려 한 것이다.

B씨가 사고 당일 운전한 차량은 시속 60㎞인 제한속도를 시속 22㎞ 초과해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4%로 면허취소 수치(0.08%)를 훨씬 넘었다. A씨는 사고가 나기 전 B씨가 운전석에 탈 수 있게 리모트컨트롤러로 자신의 회사 법인 소유인 벤츠 차량의 문을 열어주는 등 사실상 음주운전을 시킨 혐의를 받는다.

이에 검찰은 A씨가 B씨의 음주운전을 단순히 방조한 수준이 아니라 적극 부추긴 것으로 판단하고 둘 다에게 이른바 '윤창호법'을 적용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 특가법과 운전면허 정지·취소 기준 등을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검찰이 음주운전 차량에 함께 탄 동승자에게 윤창호법을 적용해 기소한 사례는 A씨가 처음이다.

지난달 5일 열린 첫 재판에서 A씨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B씨는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이들의 2차 공판은 이달 8일 오전 10시 인천지법 320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미뤄졌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최근 '긴급한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은 오는 21일까지 일정을 미루고 판사들은 주 2일씩 재택근무를 하라'고 권고했다.

김지혜·심석용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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