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기억중추 대신할 실리콘 칩 완성

중앙일보

입력

뇌의 앞부분인 전뇌(前腦)의 일부로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海馬)의 핵심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실리콘 칩이 10년의 연구 끝에 미국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시어도어 버거 박사팀이 개발한 이 '해마 칩'은 쥐와 원숭이 실험을 거쳐 언젠가는 알츠하이머병, 뇌졸중 또는 간질 등 뇌 손상 질환으로 기억력을 상실한 환자들에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12일 보도했다.

버거 박사는 먼저 해마가 모든 조건에서 어떻게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수리계획 모형을 고안한 다음 실리콘 칩에다 이 모형을 구축하고 이어 이 칩이 실험실에서 뇌조직과 인터페이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형은 정보자료 처리과정에서 작동하게 되는 신경회로의 배열을 말한다.

버거 박사는 해마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해마가 수행하는 기능을 일일히 복사했다고 밝혔다.

칩을 만들기 위해 연구팀은 먼저 쥐의 해마를 여러 부분으로 자른 다음 각 부분들을 전기신호로 자극하는 일을 어떤 전기적 입력이 상응하는 출력을 만들어내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수 백만번 되풀이했다.

연구팀은 이어 각 부분에서 얻은 정보를 조립해 전체 해마의 수리계획 모형을 만들었고 이를 다시 칩에다 옮겼다.

이 칩은 손상된 뇌의 양쪽에 설치되는 두 개의 전극을 통해 뇌와 신호를 주고 받는다. 한 쪽 전극은 다른 뇌 부위들로부터 들어오는 전기활동을 탐지하고 또 하나는 적절한 전기적인 지시를 뇌에 내 보낸다.

버거 박사는 우선 뇌척수액에서 살아 있는 쥐의 뇌 부분들을 이용해 이 칩의 기능을 실험한 다음 6개월 후 살아있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원숭이 실험에서는 뇌의 해마 기능을 정지시킨 다음 그 기능을 이 칩으로 대신하게 한다.

버거 박사는 모든 실험이 성공적이고 사람에게도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이칩을 사람의 정수리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뇌 속에 심지 않는 이유는 뇌 조직을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버거 박사는 이 칩은 손상된 해마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해마는 기억 외에 기분을 관장하기 때문에 이 칩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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