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우울증 '햇볕이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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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인 정모(서울 도봉구.52)씨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기운이 없고 이유없이 울음이 나온다. TV에서 환자가 나오면 곧 자신도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건강진단에서 별다른 질병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자 그는 대학병원을 찾아 "날씨가 쌀쌀해지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고 혼자 있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늦가을에서 시작해 초봄에 끝나는 계절성 우울증(계절성 정동장애.SAD)을 앓고 있는 것으로 잠정 진단됐다.

겨울철 우울증은 적어진 일조량의 영향을 받는다. 봄이 되면 다시 생기발랄해지고 의욕을 되찾는다. 이런 유형의 우울증은 소심하고 우울한 성격의 사람에게만 생기는 병이 아니다.

또 PET 등 뇌 영상촬영에서 일반 우울증과는 다른 소견이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 우울증과 다른 질병이라는 주장도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우택 교수는 "겨울철 우울증은 세르토닌.노르에피네프린 등 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이상으로 온다"며 "겨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은 세르토닌의 분비가 줄고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잘 걸린다

고려대 안암병원 우울증 클리닉에 따르면 계절성 우울증 환자의 83%는 여성이다. 감성적인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 클리닉에 따르면 겨울(2000년 11월~이듬해 1월)에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수는 8백40명으로 다른 계절(평균 7백명)보다 훨씬 많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주연호 교수는 "고위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이 병에 잘 걸린다"며 "남부 유럽에 비해 북유럽 사람들이 말수가 적고 침울해 보이는 것은 숲이 많고 일조량이 적으며 날씨가 춥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반적으로 전체 우울증 환자의 10~20%는 계절적 요인에 의해 증세가 악화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겨울철 우울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무기력감과 과다한 수면, 식욕.체중 증가 등이다. 단 음식과 당분을 많이 찾는다. 여름철 우울증 환자가 초조감을 많이 느끼고 식욕이 떨어지며 체중이 감소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겨울철 우울증 환자는 성욕저하.발기부전 등을 곧잘 호소한다"며 "봄이 돼 우울증이 없어지면 기분이 뜨고 의욕.행동량이 오히려 많아지는 경우(경조증)가 흔히 있다"고 밝혔다.

◇2년 이상 지속되면 적극 치료해야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겨울철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추분 이후에는 틈나는 대로 햇빛을 쬐고 점심 식사 후 바깥 산책을 하며 집안에서는 빛이 드는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계절성 우울증이 2년 이상 지속되면 약물치료.광선치료.상담 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분당차병원 정신과 현용호 교수는 "치료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강한 인공광선에 노출시키는 광선요법을 쓰거나 주위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약물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상담치료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또 여름에 비축해 뒀던 비타민D가 햇볕 노출량 감소로 인해 바닥난다. 비타민D는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시키는 데 이 분비량이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따라서 밝은 빛은 겨울철 우울증 치료에 항우울제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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