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식 좌표찍기? 그가 기자 얼굴 공개하자 욕설 쏟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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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자택 앞에서 취재 중이던 한 민영 뉴스통신사 기자의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출근을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추미애 장관 SNS 캡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자택 앞에서 취재 중이던 한 민영 뉴스통신사 기자의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출근을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추미애 장관 SNS 캡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택 앞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의 얼굴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게시해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취재가 과도하다는 비판 여론도 있지만, 법무부 장관이라는 공인이 특정 기자의 신상을 알려 ‘좌표 찍기’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탄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秋 “출근 방해”…기자 사진 공개적 게시

추 장관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파트 현관 앞에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며 “출근을 방해하므로 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며 일을 봐야겠다”고 적었다.

특히 추 장관은 마스크를 쓴 해당 기자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 2장도 함께 올렸다. 이후 사진들은 기자의 얼굴 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된 것으로 바뀌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자신의 SNS에 추 장관의 글을 공유했다. 조 전 장관 또한 최근 한 언론 취재에 대한 글을 SNS에 올리며 기자의 실명 등을 공개한 바 있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4일 ‘라임 사태’ 핵심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묻는 한 언론사 기자의 취재 질의 및 실명, 소속 등을 공개하며 “황당무계한 주장인 바 허위사실을 보도해 나의 명예를 훼손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해당 언론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秋 장관 글 논란 커져…시민단체 고발도

추 장관과 조 전 장관의 글에는 각각 여러 댓글이 달렸다. 그 중 기자의 구체적인 신상을 묻거나 ‘기레기(기자 쓰레기)’ 등 비난과 욕설을 담은 댓글이 대거 올라왔다. 반면 기자의 본분을 다한 것 아니냐는 반박 글도 있었다.

해당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논란이 되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는 추 장관을 고발할 예정이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16일 오후 대검찰청에 추 장관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법세련은 “기자가 집 앞에서 취재한다는 이유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게재하고, 비난을 가한 것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추악한 인격 살인이자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종배 법세련 대표는 “정치적 성향 등을 떠나서 전·현직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 개인의 신상을 올리며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 [뉴스1]

법조계에선 “언론 취재 자유 억압” 우려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추 장관의 글을 두고 “장관의 사생활 보호라고 주장하면서 기자 얼굴까지 대놓고 공개하는 건 그야말로 화풀이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 모순적 행동”이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헌법에 보장된 언론 취재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 등 여러 관심과 이목이 쏠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기자 신상 공개 등을 계속하게 된다면 언론 취재의 자유는 당연히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의혹에 대해 질의하거나 공인을 취재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으로, 이같은 취재는 고위직에 있는 공인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좌표 찍기’에 따른 무분별한 비난 등으로 기자 개인의 인권 침해 소지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다른 변호사는 “기자 개인에 대한 욕설이나 신상 공개 등으로 인해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며 “부적절한 방식이 아니라면 취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같은 인권 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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