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김종인의 숙원,경제민주화와 노동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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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큰 그림 그리는 전략가 #경제민주화와 노동개혁이 사회발전의 양대축이라 생각

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동개혁이란 화두를 던졌습니다. 5일 ‘우리나라에서 노동법은 성역이었다. 노동법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노동개혁을 얘기한 것은 야당을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이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경제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에 찬성하기 때문입니다.

경제3법은 모두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내용이라 재계의 반대가 결사적입니다. 여론도 갈려 있습니다. 그래서 찬성하는 쪽에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법이란 의미에서 공정경제3법 이라고 하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기업규제3법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법안인데, 야당을 이끄는 사람이 여당 편을 든다니까 당내외에서 반대가 심각합니다.

2.
김 위원장이 노동개혁 카드를 꺼낸 것은 일차적으로 당내외 반대를 무마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3법이 기업을 규제하는 법이라면, 노동개혁은 노동계를 규제하는 법입니다. 당연히 경제3법을 반대하는 재계와 보수진영은 노동개혁을 적극 지지합니다. 반대로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에 반대합니다.

그러니 김 위원장의 노동개혁 주장은 경제3법 지지와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연히 재계에선 ‘시급한 과제’라며 찬성했고, 여당에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며 반대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반기고 있습니다.

3.
노동법을 바꾼다는 것은 한마디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취업과 해고를 쉽게 하고, 근무방식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하고, 이에 따라 임금도 차이를 두자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 위원장이 전제했듯 ‘노동법은 성역’이라는 점입니다. 유연화 가운데 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쉬운 편에 속하는 것이 ‘탄력근로제’입니다. 일이 많을 때는 오래 일하고, 없을 때는 짧게 일하는 융통성을 두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탄력근로제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초 엄청난 공을 들였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일찌감치 합의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입법화가 안되고 있습니다. 노동계 일부에서 ‘실질적으로 일이 늘어난다’고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아마 처리될 겁니다. 정권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추진했는데 3년 넘게 걸린 셈입니다.

4.
그렇기에 다른 노동개혁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물론 경제3법은 처리되겠지만..
그래서 김 위원장은 ‘경제3법은 이번에 처리하고, 노동법 개혁은 따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제3법과 노동관계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 대표의 주장은 한마디로 ‘경제3법 반대’나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에 대한 반대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김 위원장에 대한 반대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주 대표의 반대는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국민의힘 내부 보수주류의 핵심인 TK(대구경북)출신 주호영이기에 만만찮습니다. 경제3법에 찬성하는 김 위원장에 대한 반란입니다. 국회표결과정에서 반란표는 확인될 겁니다.

5.
김 위원장이 노동개혁을 주장한 것은 사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입니다.

그의 필생 숙원이 경제민주화와 노동개혁입니다.
경제3법은 경제민주화와 같습니다. 정부여당이 경제민주화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김 위원장은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노동개혁은 정부여당이 노동계 눈치 보느라 안하니까 김 위원장이 직접 외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노동개혁은 경제민주화와 짝을 이루는 큰 그림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면 그에 맞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데, 기업차원의 변화가 경제민주화라면 노동차원의 변화가 노동개혁입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노동개혁은 4차산업혁명 시기에 맞는 노동관계법 개정입니다.

6.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별노조입니다. 현재 개별기업별 노조를 없애고, 산업별 노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독일 모델입니다. 김 위원장은 1960년대 독일에서 유학했습니다. 당시는 68혁명이라는 사회변혁운동이 유럽을 뒤집어놓던 격동기입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출발을 본 셈이죠.

그런데 노동법이 성역이라면 산별노조는 성역을 묶어놓은 덩어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1981년 무소불위 권력자인 전두환 대통령에게 승낙을 받고서도 재계의 반대로 실패했던 개혁이 산별노조입니다. 당시엔 정주영 전경련 회장(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현대차노조가 반대할 겁니다.

7.
김 위원장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노동개혁을 외친 것은 전략가로서 우리사회에 화두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노동환경을 만들기위해 지금부터 사회적 합의를 넓혀가야 합니다. 정부여당도 기업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노동개혁도 같이 추진해야 합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