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 키워야”…학대하다 아이 죽인 부모의 감형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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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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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결혼해서 한 달 만에 첫째 딸을 출산한 A씨(당시 20세)는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1년 만에 둘째 딸을 낳았다. 남편은 회식 등으로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이런 상황에서 2017년 12월경 셋째까지 임신하게 되자 평소 자신을 잘 따르지 않는 둘째에 대한 미운 감정이 커졌다. A씨는 이제 막 돌을 넘은 둘째가 안아달라고 다가올 때마다 밀쳐 넘어뜨렸고, 그 충격으로 아이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게워내자 더욱 화가 나 수회에 걸쳐 풋고추를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둘째의 체중이 3개월 만에 2㎏이 감소해 영양실조에 걸린 어느 날 딸은 안아달라며 양팔을 내밀었고, 짜증이 난 A씨는 어깨를 잡고 밀쳐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만들었다. 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힌 채로 7시간이나 방치됐던 둘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A씨와 남편은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남편은 A씨가 딸의 머리를 수차례 다치게 하는 걸 봤고, 멍 자국을 발견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대구고등법원은 지난해 7월 A씨에게는 징역 4년을, 남편에게는 징역 1년6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남편을 향해 “딸이 지속해서 폭행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A씨를 제지하지 않아 죄질이 무겁다”면서도 “남편까지 실형을 선고할 경우 남은 두 자녀의 정상적인 양육에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처럼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가 법원에서 선처를 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살아남은 다른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2018년 태어난 지 100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딸의 머리를 수차례 주먹으로 때리고, 올라타 눌러 사망하게 한 아버지 B씨는 1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죽은 딸의 어머니이자 B씨의 부인이 “부양해야 할 어린 자녀가 남아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생후 3개월에 불과한 딸을 엎어 재운 뒤 외출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C씨 역시 1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4년으로 줄었다. 아동학대 공범으로 함께 구속된 부인이 셋째를 낳기 위해 구치소에서 나왔다가 2심 재판 중 사망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배우자가 사망하는 또다른 비극을 겪었고, 추후 C씨 혼자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학대 위험에 놓이는 가정에 돌아간 아이들

이는 ‘아이는 그래도 부모가 키우는 게 좋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제는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원가정 보호 원칙’에 따라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다시 학대받을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재학대가 일어난 건 2016년 1591건, 2017년 2160건, 2018년 2543건에서 2019년 3431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아동폭력 사건이 계속되자 국회에서는 원가정 보호 원칙을 폐지‧완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됐다.

“원가정 보호 원칙은 죄가 없다”

그러나 원가정 보호 원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공공시스템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센터장은 “아이에게 제대로 된 돌봄과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해야지 학대하는 가정을 보호하는 게 원가정 보호 원칙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동학대는 빈곤과 부모의 질병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타나는데 이들을 교육하고, 치료하고, 지원해 건강한 원가정을 만들어주려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민관을 통한 지원체계 속에서 아이가 실제로 잘 자라는지 모니터링 하는 시스템도 갖춰져야 한다는 게 류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빠른 효과를 바라지 말고 오래 공을 들여 지켜나가야 하는 게 원가정 보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 역시 “아동이 최상의 양육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건 이견이 없는 명제”라며 “그 환경이 원가정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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