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마른 매매·전세…집주인은 늘어난 세금 내려 월세로 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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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시장이 역대 최악의 ‘거래 절벽’을 맞았다. 매매뿐 아니라 전세 거래까지 역대 최저 수준이다. 반면 임대차시장에서 반전세(전세+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다. ‘23번의 부동산 대책이 거래 동맥경화를 일으켰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31일 서울시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는 2148건으로, 7월의 20% 수준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해도 31%에 불과하다. 종로구(14건)와 중구(16건)는 한 달 거래가 20건에 못 미쳤다.

아파트뿐 아니다. 단독‧다가구나 다세대‧연립 거래도 얼어붙었다. 8월 서울 단독‧다가구 매매는 7월의 24%인 332건에 그쳤다. 지난해 8월의 41% 수준이다. 다세대‧연립(2143건)도 7월의 28%, 지난해 8월의 66%에 불과했다.

임대차 시장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6078건으로, 7월의 52% 수준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60% 줄었다. 해당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월간 전‧월세 거래가 1만건 이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반전세는 늘었다. 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 반전세(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 치를 초과한 계약)가 차지하는 비율은 14.2%로, 올해 들어 가장 높다. 전달보다 4.1%포인트 상승했다. 세입자 입장에선 임대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 전세와 달리 월세는 돌려받을 수 없어 전세보다 주거비용 부담이 크다.

집주인, 늘어난 세금 내려 전세→월세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가 내놓은 23번의 부동산 정책을 거래 절벽의 이유로 꼽는다. 집주인이 늘어난 보유세를 내기 위해 전세 대신 월세(반전세)로 바꾸고 있어서다. 여기에 임대차 3법 시행은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과 전‧월세 상한제(5%) 시행으로 4년간 임대료를 조정할 수 없게 되자 전셋값이 오르면서 월세가 늘었다.

10월부터 전‧월세 전환율이 2.5%로 낮아지면 전셋집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에 대한 세금 강화가 전‧월세 인상으로 이어져 오히려 세입자의 주거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택 관련 모든 세금을 인상한 것이 악수(惡手)란 지적이다. 집을 살 때(취득세), 집을 보유할 때(재산세‧종합부동산세), 집을 팔 때(양도소득세) 내야 하는 세금을 모두 올리며 ‘출구 없는 옥죄기’가 됐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은 “팔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줘야 하는데 거래세마저 조르니 파는 대신 주택을 쥐고 있게 만든다”며 “커진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고 증여가 늘어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날 한국경제학회가 밝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학자 10명 중 8명(76%)이 수도권 주택 가격 폭등의 주범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지목했다. 8월 18~24일 경제학자 72명에게 ‘현재 수도권 주택 가격 폭등 현상의 주요 원인이 재건축 억제로 주거 선호 지역의 공급 확대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양도소득세 중과, 임대사업용 장기 보유 등으로 매물이 감소한 데 있는지’를 물은 결과다.

응답자 가운데 30%는 ‘강하게 동의한다’, 46%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답했다. ‘다소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은 16%에 그쳤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한 명도 없었다.
‘강하게 동의한다’고 답한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택은 동질적인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 선호가 크게 반영되는 이질적 상품”이라며 “선호하는 주택의 공급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각종 세금을 중과하게 되면 가격 상승은 매우 기초적인 경제학의 원리”라고 강조했다.

임대차 3법이 ‘전세 매물 부족과 전세의 월세화로 임차인의 임대 부담을 오히려 상승시킨다’는 주장에도 응답한 경제학자의 71%가 동의했다. ‘임대료 안정으로 임차인의 권리가 강화되고 보호된다’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또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우선해야 할 목표로 53%가 ‘서민ㆍ청년층 주거 안정’을 제안했다. ‘주택 가격 안정’(24%),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9%)이란 응답도 뒤따랐다. 정부·여당이 강조하는 ‘불로소득 환수’란 답은 한 명도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세금 한꺼번에 인상… ‘출구 없는 옥죄기’

상황이 이렇지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30대에게 “매수를 기다리라”고 권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 마련)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생각할 때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조금 더 (매수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75.6대 1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상반기(11.6 1)의 7배다. 단지별 최저 당첨 가점은 평균 54.8점으로, 2017년 상반기(43.9점)보다 10.9점 올랐다. 하지만 세대주가 30대라면 자녀가 2명이 있는 4인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청약 가점은 57점을 넘기기 어렵다. 관련 보도에 ‘현실을 모르는 장관’이라는 비판 댓글이 쏟아지는 이유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더라도 실수요자에 대해선 대출 숨통을 터주는 식의 보완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 서울에서 경기·인천으로 옮기는 수요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줘서 수요를 분산시키는 식의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현주·조현숙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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