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쓴 14년 '임종일기' 베스트셀러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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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깨고 나면/봄의 나라에 도착해 있으리니/그래, 그래/하혈(下血) 을 하면서도/너는/이리도 환히 웃고 있구나' (임종5-난소암 환자 L양에게) .

'…그의 뜬 눈을 감기며/감긴 눈 사이로 맺혀 있는/눈물을 닦으며/육신의 헌옷을 벗긴다/오십오년/다정하게 살아온 문둥병 사이로/뿌리내린 간암의 질긴 섬유질…' (임종6-K씨에게) .

계명대 동산의료원 강영우(姜英宇.44.소화기내과) 교수가 14년 동안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임종 환자들과 나눈 대화와 체험을 '저녁기도' (민예원) 라는 한권의 시집으로 엮어냈다.

姜교수는 '임종' '복수(腹水) ' '객혈' '장기려박사' '새벽기도' 등의 연작시를 통해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심경과 이를 지켜보는 의사의 심정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죽음을 맞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도리어 제가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잘 살아야겠구나' 하고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

한국호스피스협회 의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姜교수가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임종을 지켜본 환자는 모두 8백여명. 1987년 동산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을 만든 창립 멤버면서 현재 책임자로 있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음은 잊고 사는 것같아 안타까웠다" 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라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우면 집안에서 외롭게 죽어가고 형편이 다소 나은 사람들은 의학적 치료를 좇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이 시집에는 이밖에 재산의 다과(多寡) 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재정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 시집의 수익금도 전액 호스피스 기금으로 사용된다. 2쇄 2천부를 찍은 '저녁기도' 는 교보문고 시부문 베스트셀러 4위에 올라 있다.

姜교수는 지난 8월 시문학사가 공모한 신인우수작품상에 당선돼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대학시절 성의(聖衣) 문학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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