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내분 격화하는 유럽…메르켈에 맞선 ‘돈 아끼자 4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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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8일 EU 회원국들의 공동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 방안에 네덜란드 등 4개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EPA=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8일 EU 회원국들의 공동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 방안에 네덜란드 등 4개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돈 문제로 분열하고 있는 가운데 EU 정상회의가 19일(현지시간) 개최된다. 경제 회복이 더딘 EU 회원국을 돕자며 독일과 프랑스가 내놓은 공동 기금 조성 제안이 내분의 새로운 발단이 됐다. 이 제안에 네덜란드ㆍ스웨덴ㆍ오스트리아ㆍ덴마크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부터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까지 과제가 산적한 EU가 내분 갈등까지 겪고 있는 셈이다. 19일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는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앞서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18일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공동 성명을 내고 “5000억 유로(약 679조5600억원)의 EU 공동 기금을 조성하자”고 주장했다. EU의 27개 회원국 중에서도 피해 규모가 큰 국가들을 지원해 유럽 전체의 경제 회복 속도를 올리자는 아이디어였다. 코로나19 대응책을 두고 EU 내에서 이견이 계속되는 가운데 EU의 맹주 격인 독일과 프랑스가 나름의 통 큰 제안을 한 셈이다.

지난달 18일 마크롱 대통령과 공동 화상 기자회견 중인 메르켈 총리. AFP=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마크롱 대통령과 공동 화상 기자회견 중인 메르켈 총리. AFP=연합뉴스

앞서 유럽에선 유럽중앙은행(ECB)이 7500억 유로의 대규모 ‘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PEPP)’를 내놓았고, 회원국들의 공동 채권 발행 등 추가 지원책에 대해 논의가 분분했다. 코로나 19로 내상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이탈리아ㆍ스페인은 “(추후 상환해야 하는) 대출이 아닌 보조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독일ㆍ네덜란드 등은 대출이 맞다며 맞섰다. 이에 남유럽 회원국들이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북유럽 국가들이 공조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공개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EU의 ‘큰 언니’ 격인 메르켈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머리를 짜낸 제안이 5000억 유로 기금이다. 재원은 각 회원국이 공동으로 차입을 해서 마련하는 방안이다. EU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와 독일이 내놓은 건설적인 제안을 환영한다”면서 “유럽이 직면한 경제적 도전이 크다는 점을 인정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뤼터 총리. EPA=연합뉴스

네덜란드 뤼터 총리. EPA=연합뉴스

그러나 네덜란드의 뤼터 총리는 “지원금이 아닌 대출 프로그램이 맞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반대 목소리를 규합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뤼터 총리가 스웨덴ㆍ덴마크ㆍ오스트리아와 연합해 독일ㆍ프랑스에 맞서도 있다”면서 이 4개국 지도자들을 ‘돈 아끼자 4인방(the Frugal Four)’라고 칭했다.

여기엔 뤼터 총리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내년 3월 선거를 앞둔 뤼터 총리는 중도보수파인 자유민주당 대표로, 연정을 구성해 총리직을 맡았다.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자유당이 주장해온 EU 탈퇴, 즉 ‘넥시트(Nexit)’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근 연정의 구심력이 떨어지고 지지율이 흔들리자 EU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U가 일부 회원국들의 재정을 보조하는 데 기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의 골자다. ‘우리 코가 석자인데 남까지 도울 여력이 없다’는 메시지다. 네덜란드의 라이덴대학의 에이미 버던 교수는 FT에 “뤼터 총리는 ‘돈 아끼자 4인방’의 리더라는 역할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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