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불우노인 500명 방문 진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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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5시30분,서울 행당동에 있는 백인미가정의원.토요일 진료를 끝내고 직원들을 퇴근을 시킨 백원장(40) 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간단한 검사기구와 시술용품·주사약·처치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만으로도 두 개의 왕진가방이 묵직하다.

교통체증과 주차에 애를 먹으며 신림동 환자 집에 도착한 시각은 7시경.미미한 의식만으로 한달 이상 병상에 누운 90대 할머니는 온몸이 욕창투성이다.“시커멓게 변한 피부는 아문게 아니라 세균막이에요.이 안쪽으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욕창이 심하면 뼈까지 파고 들어가 돌아가십니다.제가 돌본 환자 중 3명도 욕창으로 사망했지요.”

한 시간 이상 두텁게 형성된 세균막을 뜯어내고 소독하면서 환자 가족에게 주의를 당부하고,처치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는 한때 대학원까지 나온 사회학도였다.운명을 바꾼 것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두통이었다.뇌종양 진단과 대수술,그리고 오랜 병상생활‥.“퇴원할 때 그처럼 빠져있던 ‘레닌·막스’를 모두 병원에 버리고 나왔지요.”

그녀가 그처럼 좋아하던 학문이 자신과 사회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대신 그녀는 30살의 나이에 재수를 거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따고 지난해 사회에 입문한 그녀는 1년 동안 오로지 왕진만을 고집했다.임종을 앞둔 암환자,돌봐줄 사람없는 독거노인 등 그녀가 돌본 환자는 줄잡아 5백여명.

“서울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만해도 5만명이 된다지 않습니까.병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의사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면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해서 그녀는 요즘 부쩍 ‘독거노인 주치의 맺기 운동’에 매달리고 있다.

대한가정의학회 및 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펼쳐 갈 이 운동은 의사 한 명이 독거노인 한 명을 맡아 돌보는 것.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 병·의원 접수창구에 '나눔의 청진기'라는 돼지저금통을 두기로 했다.

“방문진료를 배우기 위해 일본 가정을 방문했을 때 방에서 욕실까지 도르레로 환자를 옮겨주는 1천만원 상당의 시설을 정부가 제공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핵가족화 시대에서 버림받은 환자를 의사들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중앙일보 고종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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