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이즈 무차별 확산

중앙일보

입력

부유한 가정에 성적도 상위권인 여고 2년생 K(17) 양.

지난해 9월 친구의 꾐에 빠져 단 한차례 ´원조교제´ 란 것을 했다. 그러나 몇달 후 K양에게 날아온 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양성 반응´ 이란 학교 헌혈 결과 통지서.

70세 노인 P씨. 올초 폐렴증세로 서울 모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평생 가정밖에 모르고 살아온 P씨는 그제서야 몇년 전 자식들이 정년퇴직 기념으로 보내준 태국 ´효도관광´ 을 떠올렸다.

단 한번의 외도가 ´죽음의 여행´ 이 된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배들이 돈을 모아 열어준 ´성인기념 총각파티´ 에서의 첫 경험이 에이즈를 부른 경우도 있다.

´주부 매춘´ , ´PC통신 번섹(번개섹스) ´ , ´조기 유학 탈선´ 등 에이즈가 다양한 경로로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고 있다.

과거 에이즈가 동성연애자나 외항선원.매춘 여성 등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청소년·주부·노인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에이즈 지도(地圖) ´ 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립보건원의 공식 통계로도 20일 현재 확인된 국내 에이즈 감염자수는 1천1백97명(여성 1백52명) 으로 매년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본사 취재팀이 이중 1997~2000년 에이즈 감염자 5백74명의 감염경로를 추적한 결과 남편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가정주부가 올 상반기에만 6명 등 최근 3년 사이 28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우연히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에이즈´ 판정을 받는 노인 환자 수가 2~3년 사이 급증, 올해에만 이같은 50대말~60대 환자 18명 중 6명이 판정 일주일 내에 사망했다.

이에 반해 매년 2~5명에 달하던 매춘 여성의 에이즈 감염은 지난해엔 한명이었고, 올해는 한명도 감염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89~91년 각각 21명, 25명, 18명으로 최대 숫자를 기록해오던 외항선원 감염자도 최근 5명 내외의 한자리 숫자로 줄어 대조를 이뤘다.

이런 가운데 이달초 서울 Y병원에 극비리에 입원한 한 30대 남성의 경우 국내에선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마약 주사기를 통한 첫 에이즈 감염자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준명 감염내과 교수는 "에이즈 감염 양태가 급속히 변하고 있는 것은 ´폭풍전야´ 에 비교될 수 있다" 며 "최근 연예인.식자층 사이에 해외 원정 검사 등이 보편화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에이즈 감염자 수는 5천~6천명으로 추산된다" 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상복·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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