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 개정 전망] 입장바뀐 의·약

중앙일보

입력

사상 초유의 의료계 집단 폐업 사태가 여야 영수회담을 계기로 종결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이 응급실을 떠난 23일부터 의사들의 폐업 찬반투표가 실시된 25일까지는 협상과 결렬, 물밑접촉과 신경전을 거듭하는 숨가쁜 순간의 연속이었다.

◇ 23일〓정부는 총리 주재로 고위 당정회의를 열고 약사법 개정.의료계 지원 등을 약속했다.

여전히 의약분업의 선(先) 시행.후(後) 보완이 전제였다. 최후통첩이라고도 했다. 의사들은 "정부 대책이 새로울 게 없다" 며 더욱 강경해졌다. 집단 폐업의 장기화 우려가 짙어졌다.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검찰이 의협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의대생.전공의들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의협회관에 모여 방어에 나섰다.

의협과 의쟁투는 검찰의 움직임과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여기저기서 사후 대책을 논의하느라 빈 사무실이 없을 정도였다.

서경석(徐京錫) 시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방문해 폐업철회를 설득했다.

◇ 24일〓김재정(金在正) 의협회장이 오전 10시40분 서울 혜화동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관저를 방문, 의료계의 입장을 설명했다.

교수들의 응급실 철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자 11시에는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가 진료복귀를 결정했다.

전공의들은 따로 모여 "약사법 개정과 보건복지부장관 해임"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2시 의협은 약사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곧이어 "7월 1일 이전 약사법 개정과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구 격상" 이라는 새로운 요구가 나왔다.

오후 4시쯤 김재정 회장은 "끝까지 간다. 영수회담에 기대를 걸 뿐" 이라며 마지노선을 폈다. 폐업 장기화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후 6시쯤 영수회담 결과가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1백80도 달라졌다.

의협에는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폐업철회는 기정사실화됐다. 의협 대표자회의.의쟁투 중앙위원회 등을 열어 폐업철회 찬반투표 준비에 들어갔다.

같은 시각 서울 서초동 대한약사회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 땅에는 의사만 있느냐. 약사를 도대체 뭘로 보느냐" 는 비판과 불만이 터져나왔다.
약사회는 긴급 상임이사회를 소집했다. 밤 12시를 전후해 이사진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 25일〓약사회의 회의는 25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약사회는 "의약분업 참여 거부" 를 선언했다. 전날 요구했던 대통령 면담도 취소했다. 약사회 2층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대의원들이 오후 2시쯤 약사회에 속속 도착했다. 모두 분업불참을 확인했다.

반면 의사회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일부 전공의들은 여전히 "우리의 요구사항을 모두 관철한 게 아니다. 너무 빨리 물러선다" 고 반발하기도 했다.

오후 1시 서울 마포 홀리데이인서울 호텔에서 이종윤(李鐘尹) 복지부차관으로부터 영수회담 내용을 담은 문서를 받은 의협은 이를 검토한 뒤 3시부터 4만8천여명이 전국 지회차원에서 투표에 들어갔다. 전국 1만7천6백여 병.의원이 문을 닫고 진료거부에 돌입한지 5일만이다.

신성식.기선민.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