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남아도는 원유만 12억 배럴···'탱크톱' 현실화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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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톱(tank top)’의 대표적인 말뜻은 어깨를 거의 드러내는 민소매 옷이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표 말뜻을 바꿔놓을 태세다. ‘원유저장 공간이 가득 참’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저장가능 공간은 16억 배럴 정도지만 #실제 담아둘 수 있는 규모는 11억~12억 배럴 #코로나로 올 상반기 남아돌 원유는 12억 배럴 #산유국 5억8200만배럴 감산해도 위태위태

탱크톱 공포가 27일(현지시간) 글로벌 원유시장을 다시 짓눌렀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6월물)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24.6%(4.16달러) 내린 12.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한때 30% 넘게 밀리면서 11달러 선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원유저장 시설

원유저장 시설

로이터와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선물계약이 마감된 이후 넘겨받은 원유를 담아둘 곳이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전했다.

저장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유를 저장하는 데는 돈이 적잖이 든다. 미 원유컨설팅회사인 래피던의 로버트 맥널리 회장은 최근 기자에 띄운 이메일에서 “원유는 담아두면 되는 물이 아니다”며 “굳어지지 않도록 적정 온도를 유지해주고 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비용도 만만찮다. 미국의 원유 보유자가 육지 저장시설에 1배럴을 한 달간 담아두려면 0.5~0.75달러 정도 부담해야 한다. 유조선에 저장하기 위해서는 배럴당 0.75~1.4달러 정도는 줘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저장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저장공간 자체가 부족하다. 세계 최대 원유상장지수펀드(ETF)인 USO가 이달 말까지 WTI 6월 인도분 계약을 모두 처분하기로 한 이유다. 원유 ETF는 펀드 주식가격이 WTI 가격과 거의 같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일정 규모 원유를 보유해야 한다.

도대체 저장공간이 얼마나 부족하길래?

글로벌 원유저장 가능한 규모는 16억 배럴 정도다. 경제분석회사인 IHS마킷의 추정이다. 세계가 보름 정도 쓸 수 있는 양을 저장할 수 있었다.

글로벌 원유저장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글로벌 원유저장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런데 코로나19가 상황을 바꿔놓았다. 에너지 소비가 급감했다. 올 상반기에 소비되지 않고 남아돌 원유가 18억 배럴에 이를 것으로 IHS마킷은 추산했다.

맥널리는 “원유를 저장고에 다 채울 수 없다”며 “가스, 물에 섞인 원유 등을 고려하면 실제 저장 공간은 시설 용량의 평균 70% 수준”이라고 말했다. 어림잡아 11~12억 배럴이다.

다만, 주요 원유수출국(OPEC+)이 다음 달 1일부터 하루 970만 배럴씩 감산한다. 올 상반기가 끝나는 6월 말까지 모두 5억8200만 배럴 정도를 줄인다.  올 상반기 실제 남아도는 원유는 12억 배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장 가능한 규모(11억~12억 배럴)를 고려하면, 감산합의가 제대로 지켜져도 탱크톱 우려는 가시기 쉽지 않아 보인다. IHS마킷이 예상한 상반기 중 탱크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나라별로 저장공간은 천차만별!

IHS마킷이 지난달 26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상 저장공간은 중국이 50여일 뒤면 다 찬다. 미국과 유럽은 30일 정도 여유가 있었다. 미국의 저장 시설은 지역적으로 5곳으로 구분돼 있다. 현재 여유 공간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미네소타 등 중서부 지역(PADD2)이다. 한국은 전체 저장공간의 80% 남짓 채워졌다.

주요 국가 며칠이나 버틸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국가 며칠이나 버틸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IHS마킷이 나라별로 남은 일수를 산출한 시점을 감안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저유 공간은 이미 다 찼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산유국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에 수출하기로 계약된 5000만 배럴을 미리 유조선에 선적해 인도양과 대서양을 거쳐 배달 중이다. 그 바람에 세계 바다 위에 떠도는 유조선에 저장된 원유량이 27일 현재 1억4000만 배럴에 이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사우디는 상대적으로 짧은 지중해-대서양 코스를 선택해 미국에 원유를 수출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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