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는 총선 이후로…' 오거돈, 성추행 피해자에게 제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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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 프레스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 프레스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오 전 시장의 공개 사과와 시장직 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사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4.15 총선 이후에 사퇴한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 4월초 부산성폭력상담소에 피해 신고 #피해여성 가족 입회 하에 오 전 시장 ‘사퇴서’ 공증 #사퇴 시기 두고 총선 이후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져 #조율 의혹에 미래통합당 검찰 수사 촉구 하기도

 23일 부산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부산시청 직원인 피해 여성은 이달 초 부산성폭력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상담소 측은 부산시 정책 수석보좌관을 통해 피해 사실 확인 작업을 벌였다. 오 전 시장 측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피해 여성은 4월 중으로 공개 사과할 것과 시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부산시는 피해 여성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요구사항을 따르겠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작성해 상담소와 피해 여성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담소와 피해 여성은 사퇴서의 법적 효력을 담보하기 위해 법무법인을 통해 가족의 입회하에 ‘공증’까지 받았다고 한다. 상담소 관계자는 “피해자가 원하면 공증을 받기도 한다”며 “이제 와서 이게 문제가 되나. 피해자가 조율 원하면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어느 선까지 발표할지 상담소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총선을 코앞에 앞둔 민감한 상황을 고려해 총선 이후로 사퇴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도 이 사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부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와 관련, 피해 여성의 신고를 접수한 부산성폭력상담소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 상담소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부산시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 전 시장과 보좌진들이 피해자를 위해 노력한 점은 성폭력 사건 이후 최소한의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 준 것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공증과 조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상담소 측은 이어 “다만 사퇴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사퇴 이후의 부산시는 철저하게 달라야 한다. 부산시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피해자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담소 측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부산시의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부산시에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를 구성하고 성평등 교육을 통한 조직 문화의 인식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전 시장의 사퇴 시기를 두고 피해 여성과 조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래통합당은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래통합당 정오규 서동구 전 당협위원장은 “총선 승리를 위해 청와대와 여권 권력층이 이 사건에 관여했거나 묵인했는지 등을 청문회 또는 국정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며 “피해자 고소와 관계없이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당 부산시당 이주환 수석대변인도 “오 전 시장 사퇴와 관련 ‘공증’이 오갔다는 의혹이 있다”며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황선윤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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