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사들, 승진 실적 위해 논문공장서 불량 논문 산다”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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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학자이자 과학 컨설턴트인 엘리자베스 비크 박사는 400건의 불량논문 리스트를 지난달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거의 대부분 중국 논문공장이 양산한 것으로 의심된다. [엘리자베스 비크 블로그 캡처]

미생물 학자이자 과학 컨설턴트인 엘리자베스 비크 박사는 400건의 불량논문 리스트를 지난달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거의 대부분 중국 논문공장이 양산한 것으로 의심된다. [엘리자베스 비크 블로그 캡처]

다수의 중국 의사들이 학술지 게재용 논문을 판매하는 이른바 ‘논문공장’을 이용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올해 들어 미국ㆍ유럽의 연구자나 학술지 편집자들 사이에서 실험도 하지 않은 채 연구를 한 것처럼 포장한 과학 논문을 양산하는 ‘논문공장’이 중국에 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고 9일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인민병원ㆍ대학병원 의사들이 주요 고객으로 지목된다. 승진에 필요한 논문 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똑같은 사진 쓰면서 밝기만 달라  

미생물 학자이자 과학 컨설턴트인 엘리자베스 비크 박사는 논문공장에서 양산한 것으로 의심되는 400건의 ‘불량 논문’ 리스트를 지난달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지난 1월부터 동료 학자들과 조사한 결과다.

그중엔 저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 논문의 저자들은 대부분 중국 병원 의사들이었다.

 비크 박사 등이 이런 가짜 논문들을 검토한 결과 일종의 '패턴'이 보였다. 예를 들어 저자나 게재지가 서로 다른 여러 편의 논문에서 밝기만 조정한 같은 배경의 사진들이 발견된 것이다.

항원, 항체를 측정하는 면역탁본 이미지 3개를 분석한 결과, 저자와 게재지가 서로 다른 논문에 실렸는데 이미지의 배경이 같다. 전문가들은 이런 논문들이 같은 논문공장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비크 블로그 캡처]

항원, 항체를 측정하는 면역탁본 이미지 3개를 분석한 결과, 저자와 게재지가 서로 다른 논문에 실렸는데 이미지의 배경이 같다. 전문가들은 이런 논문들이 같은 논문공장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비크 블로그 캡처]

세포의 성질을 기록한 유세포 분석(flow cytometry) 이미지를 함께 쓴 논문들도 발견됐다. 같은 이미지 위에 점의 위치만 가필하는 식으로 실험 결과를 바꾼 논문들이었다.

 비크 박사는 이런 논문들을 한 배(논문공장)에서 나온 무수히 많은 올챙이에 빗대면서 “논문 제목이 유사하거나 이미지 배치가 완전히 똑같은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최근 증가세…수법 정교해져  

이런 의혹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11월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이미 완성된 논문을  구입할 수 있는 ‘중국 논문 출판시장(China’s publication bazaar)’ 실태를 폭로한 기사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병원에선 의사들의 승급 심사 때 저명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실적을 따진다. 그러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부족한 의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논문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논문이 더 증가하는 추세다. 유럽생화학회 저널 편집자인 제이나 크리스토퍼는 논문공장 논문들의 특징을 분석한 학회 통신문에서 “2018년부터 이런 논문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위조하는 수법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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