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숨겼던 엄마가 미안해 이젠 매일 사진 찍어줄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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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조기 유합증' 수술받은 딸에게

수술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 칭얼대는 생후 9개월 된 정연양을 품에 안은 아빠가 귀엣말을 하며 달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오늘도 아빠는 정연이 사진을 찍었단다. 수술 후 매일 네 얼굴을 카메라에 담고 있어.

아직 부은 얼굴이지만 엄마.아빠는 세상에서 정연이가 제일 예쁘단다.

사진 생각만 하면 엄마는 가슴이 아프다. 네 백일 사진도 못 찍었기 때문이야. 그때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어. 할인점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는 일도 피했지. 사람들이 볼까 네 얼굴을 품에 숨기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수술이 잘돼서 이젠 달라질 네 모습에 엄마도 힘이 난단다. 수술을 잘 견뎌낸 널 위한 선물은 또 있어. 네가 태어나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모자를 꼭 씌워줄 거야. 지금까진 네 머리가 너무 작아서 맞는 모자가 없었거든.

정연아.

네가 2㎏이 겨우 넘는 작은 아기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한 달간 엄마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 사람들이 묻더라. '아기가 미숙아로 태어나 속상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면 엄마.아빠는 이렇게 대답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그런데 지난 4월 네가 '두개골 조기 유합증' 진단을 받았을 때는 믿어지지 않았어. 머리뼈가 너무 일찍 붙어버려 그대로 두면 뇌가 정상적으로 크기 어렵다는 설명도 들었지. 혹 엄마가 임신 중에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아빠가 하던 일이 잘 안 돼 걱정이 많을 때 널 가져서 그런 건 아닌지. 자책도 했단다.

눈물도 많이 흘렸지. 한 달 200만원 남짓 버는 우리 수입으로 네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빠듯하단다. (민간)보험 든 게 있지만 그것에 의지할 순 없었어.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계속 받으면 네가 이 다음에 커서 다른 (질병 관련) 보험에 가입하는 게 아예 불가능할 수 있다는 얘길 들었거든. 그래서 결심했단다. 앞으로는 엄마.아빠가 어떻게든 네 치료비를 해결하기로. 힘들지만 너한테 또 다른 짐을 지울 순 없으니까.

오빠 동우(8)한테 참 많이 미안하단다. 너를 돌보다 보니 오빠를 예뻐해 주지 못해서야. 엄마가 병원에 와있으면 오빠가 '보고 싶다'며 전화해 울기도 한단다. 그래도 네 오빠는 참 의젓해. "정연아 많이 먹고 빨리 자라라"며 널 어르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힘을 얻거든.

정연아.

수술이 있었던 20일은 아마 엄마 삶에서 가장 긴 날이었을 거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긴 수술을 잘 견뎌준 네가 참 고마워. 수술 전날 머리를 깎을 때도, 하루 종일 금식을 할 때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정연이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지. 많이 아팠을 텐데, 엄마 생각해서 그런지 안 울더구나.

여섯 시간의 수술을 끝내고 널 다시 봤을 때, 엄마는 너무 기뻤다. 수술이 아주 잘됐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그리고 '힘내라'고 격려해주셨던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단다. 의사 선생님, 후원 단체, 이웃들….

엄마는 네가 수술 받은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단다. 우리 정연이가 씩씩하게 어려움을 이겼다고 자랑할 거다. 혹시 더 큰 난관을 만나게 되더라도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 나중에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엄마는 기도한다.

정연아, 고맙고 사랑해.

항상 정연이를 생각하는 엄마가.

정리=김영훈 기자, 오지예 대학생 인턴기자<filich@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중앙일보와 ㈜진로가 희귀난치병 아동을 돕는 캠페인을 합니다. 이 행사는 두 기관이 손을 잡고 연말까지 12억원을 모아 사회복지법인 '세이브더칠드런'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본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희귀난치병 아동 가족의 사연을 연말까지 매월 한 차례 게재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로 안면기형 환자인 생후 9개월의 박정연(여) 어린이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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