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육정책 발표가 부총리 바람막이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그저께 공언한 대로 새로운 교육정책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김 부총리는 어제 실.국장 회의를 마친 뒤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지방교육 자치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교육정책 방향을 제시하려 했으나 이번 주부터 하나씩 발표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고 그걸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이다. 김 부총리의 속셈은 뻔하다. 주요 정책을 쏟아내 시간을 벌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것일 게다. 백년지대계인 교육 정책이 부총리 개인의 신변보호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꼴이다.

김 부총리를 뒤치다꺼리하는 교육부 공무원들도 보기에 참 딱하다. 과거 자료를 뒤지고 해명 자료를 만들고 부총리 주재 회의에 불려가고 언론에 해명하고…. 지난달 24일 논문 표절 논란이 제기된 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런 일에 동원돼 있다.

특히 학술진흥과와 대학지원국은 논문 중복게재, 연구비 편법 수령 등을 감시하는 게 주업무인데, 지금은 그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 부총리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대학지원국이 아니라 '부총리 지원국'으로 전락한 셈이다. 담당국뿐만 아니라 차관.차관보.실장, 다른 국.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정책이 이런 식으로 발표돼서는 안 된다. 공무원들이 단지 부처의 수장이라는 이유로 그에 협조하는 것도 안 된다. "NO"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 때 "NO"라고도 하고, "이런 식으로 정책을 발표해서는 안 된다"라고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한다. 상명하복은 공적 이익에 대한 공감이 있을 때만이다. 그것도 직무상 명령에 한해서다(국가공무원법 제57조). 이번 일은 누가 봐도 직무와 관계없는 부총리 개인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말고 직무를 수행해 달라는 뜻에서다. 그러려면 공직사회의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임용 때 '국민의 편에 서서 정직과 성실로 직무에 전념한다'고 선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