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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스피릿 <animal spirit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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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대 그리스인은 마음과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기원전 260년께 에리스트라투스가 그 해답을 내놨다. 공기로 흡입된 생명의 정령(精靈)인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이 속이 빈 신경관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근육을 움직인다는 것.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경전달물질인 셈이다. 이 같은 생명론적 발상은 근대과학이 태동하기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중세의 과학자들은 이 신비한 생명물질을 규명하기 위해 온갖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고, 갖가지 가설을 내놨다.

17세기 이탈리아의 과학자 조반니 보렐리는 그 성분이 기체인지 액체인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물속에 넣고 근육을 절단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기포가 발생하지 않자 애니멀 스피릿이 액체라고 결론지었다. 데카르트는 정신이 애니멀 스피릿을 통해 신체와 상호작용을 한다고 주장했고, 아이작 뉴턴은 신경조직이 애니멀 스피릿을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18세기 근대 생리학과 심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애니멀 스피릿은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적 해명의 무대에서 철학적.문학적 은유의 영역으로 물러났다. 여기서 애니멀은 인간이나 정신에 대비되는 비하적 표현인 '동물.야만'의 뜻이 아니라, 생명활동의 근원으로서 생명력.활력.생기(生氣)라는 의미다. 사전에는 '혈기 왕성' 또는 '원기 충만'을 뜻하는 관용구(full of animal spirits)로 남았다.

애니멀 스피릿은 20세기 들어 대공황의 해결사 존 메이나드 케인스에 의해 경제학의 무대에 새롭게 등장한다. 그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적 확신을 애니멀 스피릿이라고 규정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과감하게 뛰어드는 기업가의 왕성한 투자 의욕이야말로 경제적 번영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인에게 '야성적 충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투자는 야성적 충동의 함수'라는 번역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자가 절실하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왠지 대책 없이 등 떠민다는 느낌이 강하다. 무작정 투자를 늘리라고만 할 게 아니라 "기업인에게 호의적인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경제적 번영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케인스의 성찰도 함께 소개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