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만나는한자] 팔순 노인이 배나무 심은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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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정호(1648~1735)는 늘그막에 벼슬을 그만두고 충주에 내려가 살았다.

어느 해 도승지가 왕명을 받들고 찾아왔는데, 그는 배나무 묘목 여남은 그루를 밭둑에 심는 중이었다.

도승지는 머리가 허연 팔십 노인 정호에게 "어느 세월에 배를 따시려고 수고로운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정호는 허허 웃으면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여러 해 뒤 충청도 감사로 내려간 도승지가 인사차 다시 들렀다. 정호는 조촐한 주안상에 먹음직스런 배 서너 개를 곁들여 내오게 했다. 배를 먹어보니 달고 맛이 좋았다.

"언젠가 그대가 찾아왔을 때 밭둑에 심은 나무에서 딴 거라네. 그대는 내가 이 배를 먹지 못할 줄 알았겠지. 마땅히 비가 오기 전에 우비를 갖춘 목민관이 돼, 목마른 지경에 다다라서 우물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시게."

예로부터 어진 임금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온힘을 기울였다. 수풀을 만들어 산을 잘 정비하고(治山), 물을 잘 다스려 하천.호수의 범람을 막으며 관개용수의 편리를 꾀했다(治水). 농경시대였던 당시나 요즘 같은 이상 기후에도 더 없는 유비무환(有備無患.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음)이다.

김영만(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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