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소망만이 대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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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 적십자사 실무회담에서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과 본 회담 개최문제에 일단 합의를 본데 대해 우리는 우선 환영의 뜻을 표하고 싶다.
4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합의는 앞으로 예상되는 각종 남북 간 회담과 더 나아가서는 통 일 문제 접근의 길을 틀 수 있는 신뢰구축의 첫걸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보다 자유로운 왕래에의 희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이를 계기로 종교인·학술단체의 교류도 순순히 이루어지고 체육회담·고위당국자회담 등도 순조롭게 성사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남북의 모든 겨레가 한결같을 것이다.
그런 낙관적 전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서로간에 오래 쌓여온 불신과 적대감의 벽을 허무는 이 초기 작업에는 서로간의 이견이 큰 정치·군사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본질문제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본질문제에 접근하기 전에 상호 신뢰의 바탕이 굳건히 마련되어야 궁극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단의 규모를 우리측의 50명에 대해 북측이 3백 명으로 불균형한 숫자를 제시했다든가, 고향 방문단의 성묘를 거부하고 있는 등의 이견은 상호신뢰 구축이란 대의에 따라 풀어나가야 할 사소한 문제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부터 교류상의 상호주의가 엄격히 지켜져야 된다고 본다.
공연단은 어디까지나 고향방문단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하는 데 1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것은 결코 남북 간의 경연대회가 아니다.
고향 방문단은 문자 그대로 그가 태어난 고향 땅에 가서 그가 자라난 산천을 돌아보고 그곳의 가족·친척·친구를 만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북한은 계속 서울과 평양에서만 만나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이산가족들의 소망을 제대로 풀어 주는 길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85년에 한번 있었던 이 두 갈래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고 정기적 행사로 정착되는 일이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양측이 다음 접촉에선 현실적인 합의에 도달하여 연내실현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북측은 문익환 목사나 임수경양의 석방 등 내정에 관한 사항을 전제조건으로 고집하거나 그것을 정치선전용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여름 북한측이 시도한 개인차원의 입북사건이 정상적 남북관계의 개척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불신을 더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북의 당국자는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만 이번에 어렵게 마련되고 있는 새로운 시작은 가능할 것이다. 분단구조를 유지해온 주변의 정세가 과거 어느 때보다 남북한 관계의 정상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쌍방은 민족 대의를 살리는 엄숙한 자세로 임해야할 책무를 절실하게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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