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사 골라 턴 '형제 강도'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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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절도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정모(51)씨는 친형과 함께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행한 '한국 재계 인사록'을 입수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정씨의 눈에 들어온 집은 99년 옷 로비 의혹 사건의 주인공이자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살고 있던 한남동 유엔빌리지 등 5곳. 이 중에는 S고등학교 전 재단 이사장 이모씨와 운송업체 K사 대표의 성북동 자택도 들어있었다.

정씨는 먼저 대상자의 집에 전화를 걸어 가정부만 혼자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명의 가정부가 있던 이형자씨의 집에서는 미화 1만 달러와 현금 200만원, 다이아몬드, 카르티에 예물시계, 금열쇠 등 5억2000만원 상당을 훔쳤다. 정씨 형제는 넉 달 동안 현금과 귀금속 등 모두 5억8000여만원 상당을 빼앗았다. 이들 형제의 강도 행각은 형이 먼저 붙잡히면서 끝났다. 정씨는 "훔친 물건 일부를 돌려줄 테니 형을 선처해 달라"고 경찰에 전화한 뒤 홍콩을 거쳐 호주로 건너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한동안 피해 물품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의 형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정씨는 호주의 세차장 등에서 일하면서 9년간 도피생활을 해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는 최근 한국에 입국한 정씨를 27일 특수강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는 호주 영주권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여권 갱신을 위해 입국했다가 검거됐다"며 "자신의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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