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선발 기회 살린 '진짜 프로' 정지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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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정지윤. [사진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 정지윤. [사진 한국배구연맹]

지난시즌 신인왕에 오른 선수가 또다른 신인 때문에 벤치에서 시작한다? 왠만한 팀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여자배구 현대건설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2년차 미들블로커 정지윤(20)과 신인 이다현(19)의 이야기다. 그리고 선배 정지윤이 모처럼 선발 출전에서 제 몫을 해냈다.

정지윤은 지난 시즌 개막 전엔 박은진(KGC인삼공사), 이주아(흥국생명) 등 동기들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두 선수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정통 센터인 두 선수와 달리 측면에서도 스파이크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이 돋보였다. 결국 신인왕의 영예도 정지윤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입단해 활약을 펼친 신인 미들블로커 3총사. 정지윤-박은진-이주아(왼쪽부터). [서진=한국배구연맹]

지난해 입단해 활약을 펼친 신인 미들블로커 3총사. 정지윤-박은진-이주아(왼쪽부터). [서진=한국배구연맹]

하지만 올 시즌 정지윤의 입지는 좁아졌다. 같은 포지션의 이다현이 입단한 뒤 변화가 생겼다. 이다현은 신인답지 않은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2라운드 들어선 이다현의 출전 횟수가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정지윤의 출전 시간은 줄었다. 지난달 9일 도로공사전에선 2세트 초반까지 1득점에 그친 뒤 이다현으로 교체돼 코트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4경기 연속 벤치 출전. 지난 IBK기업은행전에선 마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처음으로 라이트로 포지션을 옮겨 나가기도 했다.

그런 정지윤이 다시 자신에게 온 기회를 확실하게 움켜쥐었다. 1일 수원에서 열린 도로공사전에서 선발로 나가 14점(공격성공률 50.00%)을 올렸다. 특히 4세트 중반 고비에선 강력한 오픈 공격을 터트려 도로공사의 추격 의지를 끊었다. 현대건설은 주전 선수 다섯 명이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면서 세트 스코어 3-1로 이겼다. 순위도 3위에서 2위로 한 단계 올라갔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정지윤과 헤일리와 로테이션에서 붙어 가니까 집중 마크를 받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줬다"며 "지난 경기에서 백업으로 들어갔더니 경기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스타팅으로 연습을 하고, 기용했더니 자기 몫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인상을 받은 정지윤.

지난해 신인상을 받은 정지윤.

선수라면 누구나 더 많이 뛰길 원한다. 벤치보다는 선발 출전이 좋다. 하지만 정지윤은 애써 "둘 다 좋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선발로 나가지 않으면 언제 들어갈지 모르고 기다리는데 그 때의 긴장감은 선발일 때와 다르다"면서도 "둘 다 좋다. 선발로 안 나가면 경기를 지켜보다 출동하니까 좋다"고 했다. 이어 "그 전 경기는 교체로 들어가도 자신있었는데 오늘은 선발로 나가니까 잘 됐다. 두 개 다 괜찮다"며 착한 인터뷰(?)를 했다. 헤일리가 합류하면서 라이트로 나설 일이 없어진 데 대해서도 "포지션이 바뀔 땐 무엇에 더 신경써야 하는지, 어느 자리에 가야 하는지 어려웠다. 헤일리가 와서 다시 센터에 포커스 맞출 수 있어 좋다"며 옆자리에 앉은 헤일리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정지윤에 이어 신인왕 수상이 유력한 현대건설 이다현. [사진 현대건설]

정지윤에 이어 신인왕 수상이 유력한 현대건설 이다현. [사진 현대건설]

하지만 정지윤과 이다현은 본의 아니게 경쟁을 펼쳐야 한다. 현대건설엔 양효진이란 국가대표 미들블로커가 있기 때문에 한 자리를 놓고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정지윤은 후배인 이다현이 귀여운 눈치였다. 정지윤은 "솔직히 경쟁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둘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상대 팀에 더 강한 스타일을 감독님을 넣으시는 거 같다"고 했다. 이어 "다현이가 잘 해서 아주 흐뭇하다. 보기 좋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잘 한다"며 "배구를 잘하고 싶은 좋은 욕심이 많은 친구다. 신인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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