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증언케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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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전대통령이 5공 청산과 관련한 자기 문제가 밑도 끝도 없이 무한정 방치되고 있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무조건 증언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은 정치권, 그 중에서도 정부· 여당이 크게 부끄럽게 여겨야할 일이 아닐 수 없다.
5공 청산을 한다고 나선지가 벌써 1년 반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 문제가 여전히 최대의 정치현안으로 남아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을 정치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이 문제를 서둘러 매듭지어보려는 성의 있는 노력이나 절충모습마저 보이지 않고 있으니 여야 정치권은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작정인가.
우리는 5공 청산문제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짜증스럽기 짝이 없고 정치권의 무능· 무력이 원망스럽다.
이 문제가 오늘 날 이지경이 된 가장 큰 책임은 6공 정권의 우유 부단과 불성실에 있다고 본다. 작년의 청문회와 전씨 일가에 대한 일련의 사법처리 등을 하고도 문제를 종결짓지 못한 것은 정부· 여당이 전씨 증언 등 마무리 작업을 골치 아픈 일로 취급하며 계속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전씨 문제가 정부· 여당에는 비록「뜨거운 감자」 라 하더라도 어차피 자기들이 할 일인 이상 진작 처리하는 것이 백 번 옳았는데도 지금껏 피하기만 해온 나약한 태도는 정말 실망 스러웠다. 전씨가 누구인가. 바로 얼마 전까지 상사요, 친구요, 동지였던 관계가 아닌가. 전씨의 문제는 전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6공 정권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끼리 합의된 처벌도 아닌 백담사 유배생활을 1년 가까이 방치해 왔으니 전씨가 정부· 여당에 불만을 갖는 것도 이해가 간다.
우리는 전씨가 무조건 증언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환영한다. 정치권은 무위· 무책으로만 있을 게 아니라 전씨의 이런 의사를 받아들여 그의 증언을 실현시키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전씨는 문제의 5공 최고책임자로서 모든 진실을 국민 앞에 털어놓음으로써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지리한 5공 청산문제에 종지부를 찍어줘야 한다.
정부· 여당은 최근 여야 협상이 잘 안되면 일방적으로 5공 청산 종결을 선언할 것이라는 기미도 보이는데 이는 안될 말이다.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종결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이젠 됐다고 느낄 수 있어야 종결될 수 있는 것이고, 국민이 그런 심정을 갖게 하자면 최소한 전씨 증언 등에 관한 여야합의의 종결방안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씨 증언이 일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분쟁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있음도 안다. 그리고 그의 증언이 정부· 여당에나 일부 정계지도자에게 부담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전씨 증언을 막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의 증언 내용이 얼마나 충격적일는지는 알 수 없으나 5공을 역사 속에 넘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겠기 때문이다. 요컨대 맞을 매는 맞아야 하는 것이다.
장소· 절차에 구애 없이 무조건 증언하겠다는 전씨의 뜻에 따라 여야는 빨리 그의 증언이 실현되도록 구체적인 합의를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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