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1명이라도 있으면 길거리 수업 계속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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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생들 특기 적성교육받고 여기에 와서 수업하려니까 힘들죠?"

"아니오"(학생들)

"고마워요. 자 그럼 7교시 수업 시작할까요?"

조연희 교사가 서울 시흥동일여고 골목길에서 동일여고학생들 2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일에 이어 두번째 길거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동 동일여고와 마주보이는 주택가 앞에서 조연희씨(42. 전 동일여고 국어교사)의 '길거리 시(詩)수업' 7교시가 시작됐다. 방학중임에도 학생들은 70여명이나 모여있었다. 길거리 수업은 기존의 쓰고 외우는 수업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상상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열린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좁은 교실의 문을 벗어나 탁 트인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조씨의 수업은 주로 '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는 상당히 짧은 글이지만 함축적이고 다양한 각도로 해석할 수 있어 학생들과 소통에 시만큼 좋은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씨는 해직교사다. 3년 전 동료교사인 박승진.음영소 씨와 함께 학교재단의 비리의혹(급식비.동창회비.장학기금 문제 등) 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지만 학교 측은 1년 5개월 동안 조씨 등을 직위해제한 뒤 결국 지난달 이들을 파면조치했다. 동일학원은 당시 감사 결과 15억5000만 원의 재정상 조치와 61건의 행정조치, 74건의 신분상 조치를 받았다. 이사장은 약식기소돼 벌금 1천만원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동일학원에 대해 시정조치를 요구한 이후 변화가 없었으나 이렇다 할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재단 비리를 폭로한 이유에 대해선 교사로서 양심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12월 조씨는 한국투명성기구가 주는 투명사회상을 수상했다. '투명한 학교 운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공로다. 물론 같이 파면당한 다른 2명의 동료교사와 함께 받았다. 그러나 조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괴씸죄'에 걸려 파면을 받았고, 교육청에선 보복성 징계 성향이 있으므로 재고하라는 공문을 학교 측에 보냈다. 학교측은 아직 묵묵부답이며, 현재 파면당한 세 선생님은 행자부 소속 소청심사위원회에 부당파면에 대한 이의신청을 내 놓은 상태다.

조씨는 앞으로도 거리수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단 1명이라도 있는 한 자신은 마이크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학교정문 앞과는 안 어울리게 진돗개들이 많은데?

"지켜야 할 게 많은가 보다. 2003년 시교육청 특별감사에서 밝혀진 내용인데 1999 ̄2001년 회계 예결산서를 보니 연간 개 사육비가 학생 복지비보다 더 많았다. (개 20마리 연간 지출금 480만원. 1마리당 평균 24만원. 이에 비해 동일여고 학생 복지비는 평균 3000원 선)

(학교 옆 생활관을 가리키며) 교육청 지원금 받아 예절교육을 하는 생활관으로 지어졌는데 이사장 가족들이 여기서 살았다. 학생들은 여기서 생활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보니 어떤가?

(동일여고 운동장에서 인터뷰를 하려 했으나 학교 측이 출입을 거부해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하게 됐다)

"(초등학교지만) 학교에 오니 편안하고 집에 온 기분이다. 20년 가까이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는 익숙한 공간이다."

-시교육청에서 보복성 징계 성향이 있으므로 학교측에 재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데?

"학교 측에선 휴지조각으로 여길 뿐이다. 교육청 말이 먹히지 않는 학교란 얘기는, 교육청이 재단에 약점이 잡혀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들게 만든다. 교육청이 1년에 100억원 가까이 국민세금으로 재단을 지원해주는데 공문 하나 보내고 끝이다. 교육청 말을 듣지 않고 학교 마음대로 한다는 건 비정상이다. 교육청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길거리 수업을 하게 된 동기는?

"1인시위를 하면서 지나치는 학생들과 눈짓을 주고받고 말을 나눠보고 하다 보니까 어느덧 친해졌다. 애들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시와 나의 느낌을 적은 유인물을 서너 번 나눠줬더니 학생들이 그걸 갖고 학교에서 토론을 벌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학생들이 나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고 해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길거리 수업에 학생들을 선전 도구로 삼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보였다면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부당하게 학교선생님이 파면이 됐고, 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고, 학생들은 나에게 배우고 싶고… 이런마음에서 출발했던 수업이었기에 거기에 난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쉬다 수업을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

"1년 반 쉬었다 하니 말이 잘 안 나오더라.(웃음) 학생들과 대화형태의 수업을 했는데 처음엔 잘 안됐다. 다행히 학생들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메워주고 있다. 대답도 잘해주고 웃어주고 그래서 힘이 난다. 학생들이 있기에 이 지루하고 힘든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켜보는 학부모들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교에 부당한 일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선생님과 학생이 모두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학부모님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학교가 빨리 정상화하고 우리 학생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데, 학생이 볼모로 잡혀 있다고 생각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이 계신다. 학부모님들이 건강한 시각을 갖고 우리 아이들에게 뭐가 좋은지 그걸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신다면 답은 나온다고 본다."

-3년 정도 투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70여 명의 졸업생이 모였던 자리에서 과거에 교사로서 침묵하고 학생들이 피해볼 것 알면서도 내 자리, 생계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 살았던 과거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 일을 계기로 졸업생들과 굉장히 친해졌다.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열면서 만났던 그 감동이 생생하다. 그 졸업생들이 지금까지 싸워주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길거리 수업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근본적 해결방안은 임시이사 파견이라 본다. 교육부에서 오신 분들이 학교가 장사하는 곳이 아닌, 사람을 교육한다는 철학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이 학교에 오셔서 터를 다시 닦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임시이사 파견을 위한 활동을 할 것이다."

끝으로 조연희 씨의 주장에 대해 학교 측 의견을 듣고자 했으나 학교 측이 인터뷰를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 인터뷰 영상은 조인스닷컴 '조인스TV (http://tv.joins.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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