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분규 없음" 노사 도장 찍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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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한 해를 빼고 19년째 연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지금 현대차와 함께 울산 경제의 '쌍두마차'인 현대중공업은 12년째 무분규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1일 울산 본사에서 17차 임금 및 단체협상을 열어 사측이 제시한 안을 뼈대로 하는 합의안(표 참조)을 마련했다. 이는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이뤄낸 결과다. 노조 안동근 기획부장은 "전체적으로 노조가 요구했던 사항들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타결됐다"며 "25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도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분규 없는 임.단협 타결 전통을 지켜온 것은 1995년부터. 이전까지 현대중공업은 한국 노동운동을 상징하다시피 할 만큼 노사관계가 험악하기로 소문난 회사였다. 90년대 초반에도 노조 측의 골리앗 크레인 점거농성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회사 측이 93년부터 2년 연속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달라졌다. 93, 94년 각각 40일과 60일간 파업하며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 근로자들이 파업이 능사가 아니란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는 무파업 전통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현대차가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근로자를 해고한 데 비해 현대중공업은 단 한 명도 강제로 내보내지 않았다. 고용 안정에 대한 회사 측의 의지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울산에서 근무하던 이 회사의 한 과장급 직원은 "정리해고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현대차 직원들 때문에 아파트 절반이 비어 있는 지경이었다"며 "이때부터 노조원들이 진정으로 회사를 믿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 측의 복지 향상 노력도 한몫했다. 회사 돈으로 지은 아파트를 사원들에게 싼 값에 분양하고 울산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설립해 자녀 교육 걱정을 덜어줬다.

노조도 달라졌다. 90년대 후반 일감이 줄어들자 노조는 세계 굴지 선박회사의 선주들에게 '파업을 하지 않고 최고 품질의 배를 만들 테니 우리 회사에 배를 발주해 달라'며 사측과 손잡고 수주활동을 벌였다. 2001년 미국의 엑손모빌사가 8억 달러짜리 원유생산설비를 발주하자 당시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좋은 배를 만들게 해 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이 설비가 제때 인도되지 못할 상황이 되자 노조원들이 나서 시간 외 작업을 하며 납기를 맞추기도 했다. 엑손모빌은 이 배를 인수하며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 달러의 감사성금을 전달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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