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달라진 열차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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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기차역 앞의 음식은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손님을 다시 안 볼 '뜨내기'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나.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그 지역 고유의 인심과 맛을 간직한 식당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어릴 적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 주기도 한다.

지난 9월 27일 오후 1시15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무궁화호 229열차.

열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간 잠시 후, 여기저기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음식 냄새가 차내에 솔솔 번진다. 주변을 슬쩍 살펴보았다.

건너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유명 패스트푸드 상호가 인쇄된 종이 봉투를 펼친다. 노릇노릇 맛있게 튀겨진 닭날개가 나온다. 옆자리 여인의 손에는 커다란 청량음료컵이 들려 있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햄버거를 벌써 한입 베어물었다. 다른 자리의 학생들은 은박지에 싼 김밥을 꺼냈다.

"도시락이나 김밥." 홍익회 아저씨가 가세했다. 한 여성이 통로 쪽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다. "얼마예요?" "도시락은 5천원이고 김밥은 3천원입니다." "도시락 하나 주세요."

요즘 열차 안의 먹을거리 풍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과 달리 출발 전에 역 주변 점포에서 음식물을 사 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홍익회 판매원의 손수레도 내용물이 달라졌다. 오징어는 맨살의 통오징어가 아닌, 가공과정을 거친 오징어다. 병맥주는 없고 캔맥주뿐이다. 찐 달걀도 없어지고 구운 달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맥반석에 구운 것이라 영양이 더 좋아요." 홍익회 판매원 생활 30년째라는 이기옥씨의 설명이다. 그래도 아쉽다. 퍽퍽한 계란에 사이다를 곁들이면 그야말로 별미였는데.

"제가 처음에 열차에 올랐을 때만 해도 최고 인기 상품은 소주였어요. 그래서 객차 안이 난장판이 될 때도 많았죠. 요즘은 캔맥주 두어개 마시는 게 고작입니다."

'호텔 레스토랑급 품질과 서비스'를 표방하며 1983년에 등장한 열차식당도 손님이 계속 줄어든 탓에 곧 문을 닫는다. 한때 80량에 이르던 기차 식당칸은 이미 40량으로 줄었다. 대신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칸이나 PC방.바둑방이 생겼다.

"안타깝지만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열차 식당칸도 필요없게 됩니다." 홍익회 정성주 사업개발본부장의 말이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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