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뭘 사죄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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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스스로의 과거 행적에 대해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처벌받을 사항이 있으면 이를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무엇을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해 사죄의 진실성을 스스로 허물어버리면서 국정원 조사 결과에 엉뚱한 해명으로 일관했다. 많은 국민이 宋씨의 회견에 실망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까닭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싶다면 진솔하고 철저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은 물론 충성서약과 거액의 공작금 수수 등 국정원이 밝힌 내용에 대해 부인과 변명만 했을 뿐이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문제만 해도 그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후보위원이란 '모자'를 씌운 사실을 사후에 인지만 하고 있었을 뿐 실제로 활동한 적은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을 '김철수'로 지목한 황장엽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내고, 귀국 직전까지도 이를 부인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구나 노동당 입당조차 1970년대 북한 방문자들이 거치는 일종의 통과 의례쯤으로 생각했다니 이런 기만을 누가 솔직한 자기 반성이라고 믿겠는가.

宋씨가 자신의 삶과 철학이 남과 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비판하려는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없다. 宋씨는 저서 등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88년엔 서울 올림픽을 '평화로운 게임이 될 수 없는 행사' 라고 훼방했다. 그러나 그가 북한 체제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선 비판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고도 그가 양심적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宋씨의 회견은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다 국정원 수사로 모든 게 드러나자 재차 이를 호도하려는 행동이 아닌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더구나 그의 이런 행동은 그에게 애정을 가졌던 민주인사와 학자들에게마저 깊은 실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가 진정 추방되느니 처벌을 받겠다는 각오라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오를 다시 과감히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