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부총리 첫마디가 수도권 규제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권오규 신임 경제부총리가 첫 정례 브리핑에서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를 풀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수도권 규제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탕정이니 파주니 해서 (공장 인가를) 다 해 줬다. 지금까지 안 된 게 뭐 있는지 얘기해 보라"고 했다. 결국 다 들어줬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이 정부 사람들 특유의 오만과 오기가 배어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첨단 정보기술(IT) 등 여러 기업이 수도권 규제 때문에 투자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신임 경제부총리가 지엽적 문제라고 하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기업들은 지방으로 가기보다는 중국.베트남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기업들은 수도권이라는 지역 경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노사정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해외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기업의 37%가 수도권 규제를 가장 큰 이전 이유로 꼽았다. 외국자본을 국내로 유치하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덩어리' 규제로 느끼는 것을'지엽말단'이라고 몰아붙이니, 권 부총리가 현장의 어려움을 제대로 보고받기나 하는 건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권 부총리 스스로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풀겠다고 강조한 게 엊그제다. 취임식에서 "투자가 늘어나도록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선진국 수준의 기업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래놓고 정작 기업들이 풀어 달라는 규제는 건드릴 수 없다니 해괴한 논리다.

핵심 규제를 막아 놓고 무슨 수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인가.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20만 명의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조사도 있다. 길거리에 실업자와 구직 단념자들이 넘쳐나는데, 정부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을 놓아 두고 다른 곳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