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그녀를 그릴 수 없었다, 사랑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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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초의 수퍼모델

데브라 N. 맨코프 지음
김영선 옮김, 마티
240쪽, 1만7000원

화가와 모델의 사랑과 결혼은 서구 미술사에 흔한 이야기다. 남성 화가와 여성 모델 사이에 화톳불처럼 지펴지는 사랑의 불길은 작품의 에너지가 되어 걸작 탄생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제인 모리스(1839~1914)는 화가에게 영감을 준 모델 중에서도 수퍼급이었다. 제인은 영국 화단에서 일어났던 19세기 복고주의 미술운동인 '라파엘 전파(The Pre-Raphaelites)'의 뮤즈였다. '라파엘 전파'의 중심 인물인 윌리엄 모리스는 어느 날 제인이 그 앞에 모델로 앉아 있을 때 캔버스 위에 절망감에 사로잡혀 썼다. "나는 당신을 그릴 수는 없지만 사랑합니다"

2년 뒤인 1859년 윌리엄은 제인과 결혼했고, 제인은 '라파엘 전파' 를 상징하는 미의 여신이 되었다.

지은이는 제인의 미모를 "동시대 여느 여성과 유달랐다"는 말로 요약한다. 큰 키, 단단하고 선이 날카로운 얼굴, 숱 많은 속눈썹에 에워싸인 진한 회색빛 눈, 굼실굼실 물결치는 검은 머리카락 등 제인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보편적인 미인상과는 다른 이국적 존재였다. 노동 계급인 제인이 상류사회 모임인 '라파엘 전파'에 들어왔을 때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범한 재능"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로제티는 친구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 희망 없는 외롭고 고독한 사랑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제인에게 집착한 로제티가 남긴 작품은 아주 특별한 사랑에 관한 그림으로 강렬하고 우울하며 어둡고 신비하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을 사로잡으며 당대의 낭만적 이상을 만들어낸 제인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이 답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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