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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학교 없애야"…조국 논란 영재고·과학고로 불똥 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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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진선여고에서 열린 영재학교·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일반고 진학을 위한 '종로학원하늘교육 고교 및 대입 특별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진선여고에서 열린 영재학교·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일반고 진학을 위한 '종로학원하늘교육 고교 및 대입 특별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당‧정‧청이 현행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전교조 등 진보교육계에서 영재학교‧과학고도 전환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그대로 둔다면 공교육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특혜 의혹에서 시작된 고교 개편 논의가 영재학교‧과학고로 옮겨 붙고 있다.

17일 전교조와 좋은교사운동 등 진보 성향 교육단체는 교육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괄 전환하는 안을 여당·청와대에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고교체제 개편엔 영재학교·과학고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혔다.

이들은 외고·자사고만 없애면 '수월성 교육'의 수요가 영재학교와 과학고로 한층 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영재학교·과학고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최적화된 교육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의 과열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재학교는 서류평가·영재성검사·지필고사·조별토론·면접 등을 통해 까다롭게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외고·자사고보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효과가 높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을 희망하거나 재학 중인 학생은 사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주 6일 이상 사교육을 받는 비율은 과학고·영재학교 희망자가 48.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국 단위 자사고(46.8%), 외고·국제고(41.3%), 광역단위 자사고(39.2%) 순으로 나타났다. 고1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월평균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1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비율은 영재학교·과학고 재학생(37.7%)이 가장 많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교조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은 영재학교·과학고를 '위탁 교육기관'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현재처럼 중학교 졸업생을 영재학교·과학고가 직접 선발하는 방식 대신 일반고 학생 가운에 과학영재를 선발해 영재학교·과학고에서 가르치는 방식이다. 영재학교·과학고에서 수업은 받지만, 일반고에 학적을 두고 졸업도 일반고에서 한다.

학생 선발도 관찰추천제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관찰추천제는 2012년부터 지역 영재교육원 선발에 활용하는 방법으로 교사가 영재성이 있는 학생을 장기간 지켜본 뒤 추천하는 제도다. 관찰추천제에 찬성하는 이들은 "학생의 현재 성취 수준보다 미래발전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고 주장한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지금처럼 영재학교·과학고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교육이 이뤄질 경우 오히려 과학영재들의 창의성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구본창 정책국장은 "현재 영재학교, 과학고 입학은 진정한 영재가 아니라 사교육 등에 의한 '만들어진 영재'가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기존 영재학교·과학고 운영과 선발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재학교‧과학고는 반발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과학고 교장은 “고교 서열화 등을 이유로 관련 제도를 바꾸면 현장의 혼란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부 지역에서 영재학교·과학고의 위탁 교육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돼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영재학교 교장도 “사교육을 줄이려고 영재교육원 선발에 관찰추천제를 도입했지만, 그에 맞는 또 다른 사교육이 등장했다”며 “진보교육단체의 주장처럼 일반고에서 교사 추천으로 과학영재를 선발해도 이를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고, 학생부종합전형처럼 불공정 시비에 시달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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