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호박·반박에 명박까지…한나라당 ‘박’깨지나?

중앙일보

입력

잘나가던 한나라당이 요즘 삐걱거리고 있다.

시발은 지난 11일 치러진 전당대회다. 강재섭-이재오 양강 구도의 당대표 경선전이 대권주자 대리전 논란에 휘말리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난산 끝에 강재섭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지만, 여진(餘震)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은 지난 5·31선거참패 이후의 열린우리당 분위기와 흡사하다. 내용이야 어찌됐건 분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열린우리당이 ‘안돼서’ 분당을 걱정했다면, 한나라당은 ‘잘돼서’ 분당을 걱정하는 꼴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논란의 중심에는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은 현재 한나라당을 결속시키는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둘 중 하나가 헛기침만 해도 그것은 ‘바람’으로 변해 당에 휘몰아친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친박(親朴)-호박(好朴)

11일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의 ‘친박(親朴)’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당대표에 선출된 강재섭 대표 스스로가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의 도움을 받아 당대표에 선출됐음을 시인했고, 박근혜의 복심 전여옥 의원도 지도부에 자력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또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형오 의원도 친박 인사로 분류되고 있고, 18일 강 대표가 단행한 당직개편도 친박 인사로 꾸려졌다는 평가다. 지명직 최고위원 한영, 3선의 황우여 사무총장, 공동대변인인 나경원·유기준, 홍보기획본부장 김학송, 전략기획본부장 김성조 의원 등 상당수가 박근혜 전 대표와 친하거나(親朴), 박 전 대표를 좋아하는(好朴) 인사들이다.

친(親)이명박계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싹쓸이”라는 표현을 쓰며, “견제가 불가능해졌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반박(反朴)-명박(明博)

이런 당 운영이 달가울 리 없는 쪽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전 시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로 민정당’이라는 세간의 한나라당 비판에 대해 “그 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당 운영이나 당직자 구성 등에 있어 다양한 색깔의 모습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 전 시장의 이 같은 언급이 당직개편이 이루어지기 전일 때임을 감안해보면, 현재 분위기는 더욱 냉랭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경선시기에 돌입한 어느 주요한 순간 ‘불공정’이라는 한방을 먹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전 시장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대표 경선에서도 대리전, 색깔론이 나오는데 앞으로 대선후보 경선은 어떨지 우려가 크다”고 말한 것에서 이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사문제는 인사권자한테 맡기고 그가 책임을 져야 될 일”이라며 “앞으로 당 운영을 얼마나 공정하게 하는가가 문제다. 지켜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당대회 불씨, 화마(火魔)될 수도

‘2007년 대선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고 있는 박근혜와 이명박. 현 정부가 민심이반으로 지지율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낸다면 대권쟁취의 가능성은 현재로서 매우 높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권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대선후보 경선은 당대표 경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따라서 이번 전당대회 결과와 당직인선은 박근혜, 이명박 양측 모두에게 분란의 씨앗이 되기에 충분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전대 후 이 전 시장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계보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흠집이 갔고, 여차하면 상대에게 불공정 경선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 약점을 떠안았다.

반면 이명박 전 시장은 지도부 장악에 실패했지만, 오히려 쓸 수 있는 카드를 더 많이 가지게 돼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YS와 이회창 전 총재까지 전대결과를 두고 박근혜 전 대표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무라고 있어 관전자들의 동정표를 얻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분당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점화된 불씨는 언제든 ‘화마(火魔)’로 변할 수 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면, 100일 민심대장정을 떠난 손학규도 변수. 양측의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한나라당의 또 다른 대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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