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전씨 쓸쓸한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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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담사의 추석은 쓸쓸했다. 제주인 전기환씨는 감옥에 가있고 제관인 전두환 전대통령은 절간에, 경환씨 역시 감옥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차례는 하는 수 없이 백담사에서 약식으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추석 차례는 전두환·이순자 부부, 시집간 딸, 막내아들 재만군(고3)등 단 4식구가 올렸다. 맏아들 재국씨는 전씨의 맏손자 첫돌잔치를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최근 미국에 돌아갔고, 큰 며느리와 손녀는 한국에 있으나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 말고 형수·제수·조카들은 일체 백담사에 오지 않았으며 서의현 조계종총무원장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이양우 변호사·김병훈 전 의전수석·민정기 비서관 등 측근 4명만이 차례를 올린 후 낮에 찾아왔다.
측근 4명은 절간의 추석음식이 허술할 것에 대비, 떡·과일 등을 분담해 각기 승용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왔다. 음식종류보다 양에 더 신경을 썼다. 백담사를 경비하고있는 청와대경호원·경찰들에게 그냥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워낙 길이 막혀 14일 새벽에 출발한 측근들이 백담사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쫌. 전 전대통령은 이들에게 저녁이나 함께 먹고 서둘러 돌아가라고 권했다. 서 총무원장과는 점심때 별도로 만났다.
전·이 내외는 측근들을 본사에서 5백m쯤 떨어져 있는 관음전으로 안내했다. 방 한 칸인 관음전은 전씨가 오기 전에는 폐옥처럼 버려져있던 곳. 주변엔 참외·수박밭과 원두막이 있다.
측근들이 먼저 가져간 술 한잔을 올렸다. 전씨는『여러분들 성의를 생각해 딱 한잔만 받겠다』고 말한 뒤 쓸쓸한 심회를 간간이 토로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지">
그는『엊저녁(13일)에는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특히 아웅산에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때 죽었어야 하는 건데…. 그 이후 내가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인생 아닌가. 어쨌든 평화적 정부이양을 했고…. 육신의 삶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 복이라면 복이지. 난생 처음 불교에 접해 요즘은 새로운 삶을 느끼고 있지….
그는 이어 낮에 서 총무원장을 만나 들은 얘기를 전해주었다.
서 원장이 최근 불교계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이 전씨가 증언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이 알고있기에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 것이 신문에 나 죄송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서 원장은 내가 조건 없이 증언하겠다고 늘 하던 말을 전하기만 했다(민정기 비서관은 생방송 운운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 여기 와서 안 것이지만 불경엔 변명을 하지 말란 말이 있어. 그 동안 내가 혹독한 비판을 받고도 가만있었는데 잘한 것 같아.』

<이순자씨가 직접 도배>
식사가 대충 끝나갈 무렵 이순자 여사는 무릎관절에 통증이 온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요즘 백담사의 아침저녁은 춥고 일교차가 심해 파카를 입어야할 정도다. 밤9시쯤 식사와 환담이 끝나고 측근들은 전씨가 시키는대로 서울로 떠났다.
전씨 부부는 금년 겨울도 백담사에서 지낼 준비를 끝냈다.
그들이 기거하는 방과 스님들 방 모두를 군불 온돌에서 연탄보일러로 바꿨다. 방도 도배를 하고 문틀을 이 여사가 직접 뜯어 씻고 창호지를 새로 발랐다.
청와대에서 지난 7월 1·5마력 짜리 발전기를 3마력 짜리로 바꿔주어 방에 시골여관방에 다는 형광등도 달고 TV도 갖다 놓았다. 촛불·가스 불이 사라져 한결 밝아졌다.
목욕시설은 여전히 없어 여름엔 야외화장실 옆에 판자막을 치고 샤워를 했고 추워지면 작년처럼 물을 데워 김장용 플라스틱 통에 부어 목욕을 할 참이다.
최근 전씨의 얘기가 이따금 바깥에 나가고부터 백담사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얘기를 측근들은 부인했다. 오히려 전씨 측이『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으니 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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