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금강산 달러' 용도 미묘한 갈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대북제재를 다룬 한.미 간의 협의에서 미국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를 꺼냈다. 북한을 비롯한 불량 국가의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자금유입을 통제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 순방 중 한국에 들른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차관을 통해서다. 한국자금의 북한 유입에 대한 우려가 미사일 발사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론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은 19일 "정부는 레비 차관에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의 성격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고, 그는 우리가 얘기하는 게 뭔지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문과 개성공단.금강산 문제는 관련 없다는 우리 입장을 미국이 이해했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정부는 레비 차관이 자금 전용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언론 보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한.미 간에 오갔는지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레비 차관이 자신의 방한 사실을 불쑥 공개한 배경도 석연치 않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펼치면서 달러를 북한에 유입시키고 있다고 우려해 왔다.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 정상회담을 대가로 한 수억 달러의 대북 불법자금 제공에 불만을 가져 왔다. 이런 자금이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돈줄이 돼 왔다는 의혹이다.

특히 지난해 9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돈줄을 바짝 죄어 온 미국은 한국의 대북 달러 제공으로 효과가 반감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북한은 금강산 관광 대가를 마카오 계좌가 아닌 제3국 계좌로 보내줄 것을 현대아산 측에 요구했다. 비공개 계좌가 어딘지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가장 큰 돈줄이다. 1998년 11월 관광 시작과 함께 현대는 북한에 2005년까지 9억 4200만 달러를 제공키로 했다. 초기에는 매달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북한에 건네졌다. 도중에 관광적자가 발생하면서 일인당 50~100달러씩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매달 100만 달러 정도를 챙기고 있다.

개성공단도 달러박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단계 100만 평 개발 대가로 토지 임차료가 330만 달러, 건물 철거.이전 비용으로 870만 달러가 이미 지급됐다. 7000명의 북한 노동자 임금(일인당 월평균 57.5달러)으로 올 상반기에만 290만 달러가 건네졌다. 내년 공단 개발이 본격화하면 북한 근로자의 수는 10배가량 늘게 된다. 제이 레프코위츠 특사가 개성공단을 '하루 2달러의 노예 노동'으로 비판한 것도 근로 조건보다는 자금이 북한에 건너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 관리기관이 챙기고 있다. 지난해 시범관광을 마치고 본관광을 추진 중인 개성 시내관광의 경우 북한은 금강산 관광보다 월등히 높은 일인당 150달러 수준의 관광대가를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지를 관할하는 군부 등이 달러벌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8월 평양에서 개최하려는 아리랑 공연도 불씨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은 7000명의 남한 관광객을 불러 들여 350만 달러의 수입을 얻은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협력기금까지 대주며 방북을 활성화할 경우 미국 측의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미사일과 관련한 대북제재는 민간이 상업적 차원에서 벌이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보다 전략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