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빠지라”던 북, 이번엔 “북남 관계 미국 개입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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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3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동시다발로 포문을 열었다. 온라인 선전 매체인 ‘메아리’와 ‘우리민족끼리’는 각각 미국과 한국 정부를 겨냥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자신들이 하고픈 말이 있을 경우 외무성 등 정부부처 등의 성명이나 담화, 각종 매체를 활용해 왔다”며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 일본을 비판한 적은 있지만 한꺼번에 비난하고 나선 것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의 실무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한반도 주변의 판을 다시 짜려는 시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일본도 비판하는 보도를 내놨다.

북ㆍ미 실무협상 가시화속 공개 주장 #남북 협력 막는 '대북제재' 완화 의미 #한ㆍ미 정상회담서 요구하라 메시지

남북한과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12~14일 사흘간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태풍 '링링'으로 파손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지붕 등을 공사했다. 유엔사는 북한 측 작업 인력이 유엔사 승인 아래 JSA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들며 보수 공사를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 북한은 각각 정상회담(한미)과 북미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남북한과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12~14일 사흘간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태풍 '링링'으로 파손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지붕 등을 공사했다. 유엔사는 북한 측 작업 인력이 유엔사 승인 아래 JSA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들며 보수 공사를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 북한은 각각 정상회담(한미)과 북미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메아리’는 이날 “최근 미국이 북남 관계 진전이 북핵 문제 진전과 분리될 수 없다고 남조선 당국을 강박하고 있다”며 “강도의 횡포”라고 비난했다. 또 “북남관계 개선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속도 조절을 운운하며 북남관계를 조(북)미 관계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떠들어 대던 미국이 저들의 ‘승인’이 없이는 북남관계가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달 들어 세 차례(9일, 16일, 20일) 외무성 관계자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실무협상에 나서겠다고 반색하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나아가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외세의 눈치를 보며 외세의 지령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간 북·미 관계에서 한국은 빠지라고 공언해 오다가 북·미 협상이 가시화하자 미국을 향해 남·북 관계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발표는 24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등장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선 북한 비핵화 진전을 위한 정상 간의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남북 관계에 미국이 참견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과 진전은 대북제재 해제나 유예 없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결국 북한의 주장은 한국이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금강산 관광 등을 위한 대북제재 해제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일본의 대규모 대표단을 초청하고, 비공개 접촉을 이어가던 북한은 일본 때리기에도 나섰다. 노동신문은 이날 “사죄 배상만이 유일하게 옳은 선택”이라는 정세론 해설에서 “반인륜적 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며 “죄를 지었으면 응당한 책임을 느끼고 속죄하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일본의 미래는 성실한 과거청산에 달려있다”며 “과거 죄악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충분히 하는 것이 일본에 주어진 유일하게 옳은 선택안”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협상이 가시화하자 대일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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