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빛, 거울처럼 투명한 … 주명덕 40년 사진인생 돌아보는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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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주명덕(66)씨는 카메라를 "내 자존심"이라 부른다. 사진이 "역사는 짧아도 '사실과 기록'이란 특성으로 그 어떤 예술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그는 "사진을 시작할 때부터 한국 사회를 거울처럼 솔직하게 다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40년 작품세계는 '자존심' '사실과 기록' '한국 사회의 거울'이란 단어로 한국 사진사와 겹친다. '왜 찍느냐'고 소리지르며 화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더 눌렀다.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주명덕 표 사진'이다.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주명덕: 회고'는 그가 평생 찍은 작품으로 한국 사진의 한 시대를 보여준다. '만드는 사진' '장식적인 사진' '액자 좋고 큼직한 사진'이 잘 팔리는 시대에 '정신이 살아있는' 그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함께 울린다. 작가는 "한국 사진은 이런 거야"라고 사진으로 말하고 있다. 다닥다닥 비좁은 듯 벽면을 메운 전시작은 모두 600여 점. 작아서 더 강한 흑백의 그 빛 저 너머에서 한국인의 초상이 떠오른다.

주명덕의 이름을 알린 1965년 작 ‘홀트씨 고아원’ 연작 중 한 점. 혼혈 고아의 얼굴 위에 한국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빛이 흐른다.


동그랗게 뜬 눈이 우리를 쳐다보는 이 아이의 이름은 혜숙이다. 60년대 초 '홀트 고아원'에 들렀다가 혼혈 고아들을 만난 청년 주명덕은 이렇게 썼다. "혈육도 없습니다. 생활도 없습니다. 물론 감정도 없습니다. 단지 내게는 검은 살갗과 거역치 못할 숙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작가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한 소녀의 얼굴로 제시했다.

주명덕씨는 사람을 많이 찍는다. "내가 가장 좋아한 모델"이었다고 밝힌 영화배우 오수미, "이분의 사진을 오랫동안 찍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 한 성철 스님 등 전시작의 삼분의 일 이상이 초상사진이다. 그는 "초상사진은 사진가에게 주어진 숙명적 작업"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준다"고 했다.

80년대 말부터 나타나는 그의 '검은 풍경'은 검은빛이라도 다 같은 검은빛이 아님을 일러준다. 평면 인화지에 두께가 다른 빛이 넘실거린다. 한국 산의 기(氣)다. 주명덕씨는 카메라로 한국 산수화를 그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출발해 한국 문화 유산의 기록, 초상 사진, 자연과 도시 풍경으로 나아간 리얼리스트 주명덕씨의 사진 인생이 세월의 빛을 타고 말을 건넨다. 그는 또 다른 길에 나서는 중이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20일 오후 7시30분 서울 남산 소월길 '포토 에이젠시 트렁크갤러리'에서 '7월의 작가 주명덕-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054-745-7075.

경주=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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