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색 뺀 「친정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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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0일 단행된 민정당 당직개편은 이종찬 사무총장-김윤환 총무의 티킷을 교체함으로써 그 동안 정계개편 등 정국운용과 당 개혁을 둘러싼 당내잡음과 마찰을 해소하는 강성포진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개편의 초점은 이종찬 총장의 거세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박준규 체제의 기본생각은 12월 전당대회까지 당 체제를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정기국회에 대처해 나가려는 것이었다.
물론 당내 강경파와 여권 내에서는 이종찬 총장의 온건하고 비판적인 처신에 불만을 품고 교체를 요구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박준규-김윤환 중심체제는 소소한 당내 마찰이 있더라도 그대로 끌고 간다는 생각이었고 영등포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이들의 의견이 수용돼 당직개편은 없는 걸로 거의 결론이 났었다.
그러나 이종찬 총장이 당이 목표하고 있는 민정-공화 중심의 정책연합 등 정계개편 구상과 내각책임제 구상을 시기상조라고 정면비판하고 나서고 당 운영에 있어서도 부총재 경선제의 조기 도입등을 강력하게 요구, 당주류와의 이견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게 되자 당 지도부는 다시 개편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이종찬 총장을 교체할 경우 TK 세력 일색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도 김윤환 총무의 교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개편에서도 TK출신이 의도적이다시피 한사람도 기용되지 않은 것은 그런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편의 중심이 이종찬 세력의 배제에 있는 만큼 앞으로 이종찬계는 파벌 부용이라는 차원에서 당내에서 철저하게 견제당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지부 위원장인 남재희 의원을 중앙위의장에 기용한 것이나 서울·경기 등 중부지역에서 이종찬파와 세력을 다투던 이한동 의원을 총무로 다시 기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당에서 철저하게 소외될 경우 이종찬 세력이 계속당에 도전적 태도를 취하는 등 독자세력을 구축하게될지 거취가 관심거리다.
새로운 이춘구 사무총장-이한동 총무 티킷은 지난 12대 국회후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이 가동시켰던 강성팀이다.
이것은 그동안 당내외에서 노대통령의 집권 제 2기를 맞아 추진력있는 팀웍을 구축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소리가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당 운영이나 대야관계에서 강성 기류가 지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공안정국으로 냉랭한 상태에 있는 여야관계가 보다 딱딱하게 경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 공안정국을 밀어온 정부내의 추세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여야간에는 협상보다는 대결 분위기가 감돌 수 있다. 야당측이 새로운 민정당팀에 즉각 불만을 표시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야의 막후 실질문제는 김윤환 총무가 상당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편에서도 고심한 부분이 바로 김총무의 경질이었던 것 같다.
김총무가 대야의 거의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해 왔고 깊숙한 대화통로를 맡고 있어 앞으로 김총무의 음성막후 통로가 정계개편·5공 청산문제 등에서 중요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막후통로와 이한동 신임총무의 공식통로가 어떻게 적절히 조화될는지 주목된다.
새팀은 5공 청산과 정부의 토지공개념 문제 등 개혁적 입법추진에는 보다 강력하게 대처할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이 그의 통치기간 중 혁명적인 업적으로 토지공개념 관계 법안들을 내놓았지만 민정당측은 선거와 조세 저항등을 이유로 반발해 왔다.
이춘구 사무총장은 그전부터 보수개혁을 주장해온 만큼 이 문제의 추진에서 보다 의욕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 5공 청산문제로 걸려있는 전두환씨의 증언과 정호용 의원 등 핵심처리 문제에서도 TK중심 전당체제보다는 적극적이라고 보여진다.
이춘구 총장·이한동 총무 모두 5공 인물이고 특히 이한동 총무는 5공 잔류파들과 친분이 깊다.
하지만 정국돌파를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노정부의 기본생각인 만큼 새팀이 어떻게든 이를 반영해 수습방안을 만드는데 보다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각에서는 5공의 늪에서 빨리 탈출하려면 야당이나 여론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개편에서 박준규 대표위원이 유임됨으로써 당 운영에 있어서 노-박 체제가 견고함을 보여 주었다.
박대표는 당 개혁위까지 떠맡게 됨으로써 당내 위치를 보다·강화시켰다.
이춘구 사무총장은 취임준비 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체제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영향력을 갖고 있어 박준규-이춘구 팀웍의 조정도 관심사의 하나다.
이총장은 특히 박철언 정무장관에 대해서는 그의 북방정책이나 업무추진 방식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 인물이어서 박장관의 당내 운신은 훨씬 불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계개편 등 복잡한 정국상황을 맞아 드러나기 시작한 당내 갈등을 강성의 5공 팀으로 수습한다고 해도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땐 일시적인 미봉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우선 당장「5공회귀」라는 비판을 견디어야 할뿐 아니라 당내에 팽배한 개혁요구의 소리를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정국이 내각책임제 개헌·정책연합 등 복잡하게 얽히게 되면 그러한 당내의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당내갈등은 노골화돼 균열의 조짐이 나타날 수도 있다. 새로운 민정당 팀이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가장 주시하고 싶은 부분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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