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고종과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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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열강의 격돌 앞에서 자주 노선을 취할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인가? 고종의 이런 고민에 해답을 준 것은 일본 주재 중국외교관 황쭌센(黃遵憲)이 쓴 '조선책략'이란 책자였다. 모든 일은 중국과 상의해 실천에 옮기되(親中國),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結日本),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해서(聯美國) 러시아를 견제하라는 게 골자였다 (김용구, '세계 외교사' 조선편). 그러나 일본은 거칠었으며, 미국은 너무 멀었고, 러시아는 음험했다. 자주 노선은 세력균형을 만드는 것인데, 균세(均勢)에는 힘이 필요했다. 고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1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이 힘을 조금 길렀다는 점을 제하면 고종과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 노선은 닮은 꼴이다. 열강의 간섭을 덜 받겠다는 '자주외교'가 그렇고, 세력균형을 통해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균형자론'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 사태에 직면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넓어졌는가? 국제질서가 고종 때보다 유리하게 변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별로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일본을 제하고 나머지 열강들은 모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됐고, 4자 구도가 미.일, 중.러 간 2자 구도로 훨씬 강화됐으며,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보호를 받는 문제 국가 북한이 첨가됐다. 탈근대의 시대에 근대적 유산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지역도 이곳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기억이 집중돼 있고, 비장한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이런 복잡한 구도에서 북한은 보란 듯이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김정일식으로 표현하면, "제국주의를 까부술 위대한 혁명무력"을 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과격한 방식으로라도 막힌 통로를 뚫고자 하는 사람이다. 국제질서에 끔찍한 충격을 가하고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배짱으로 자신은 잠적했다. 정작 곤혹스러운 것은 한국정부다. 북한 문제는 내가 해볼 터이니 기다려 달라고 열강들을 다독거려 놓고 한없이 평양에 다가갔던 게 저간의 정황이었다. 속된 말로 뭐 주고 뺨 맞은 격이니 서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섭섭함을 은근히 내비쳤던 통일부 장관에게 북측 대표는 '선군정치에 남한 인민들이 덕을 보고 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가감 없이 전했다. 남한 대표가 실어증(失語症)에 걸리든 말든, 비장한 규탄성명서가 발표되지 않는 한 미국과 일본은 이들이 한통속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한국을 미.일 동맹으로부터 떼내는 것, 아니면 동정심이 가득한 한국정부의 표정을 노출시키는 것이 김정일이 노린 여러 수 중의 하나라면, 적어도 미사일 발사의 부수적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마침, '전략적 침묵'으로 일관했던 노 대통령이 선제공격론을 들고 나온 일본에 일갈했으니 김정일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결(結)일본의 리더였던 김홍집은 동대문에서 민중에게 맞아 죽었고, 고종은 조선의 패망을 봐야 했다. '조선책략' 이후 120여 년이 지났어도 친(親), 결(結), 연(聯)의 대상 국가가 누구인지를 헷갈려 하는 요즘이다. 자주외교와 균형자의 교두보였던 평화 공존 전략과, 일단 살려놔야 전쟁을 방지한다는 대북 지원 정책의 효용성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산산조각이 났다. 전력 제공 약속과 쌀을 달라는 호소를 외면할 수도 없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불량국가'로 더욱 밀어붙일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가 흔쾌하지도 않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면, 자주 깃발을 내건 한국은 조각배처럼 거친 바다를 한동안 떠돌 것이다. 일본은 교활하고, 미국은 거칠어졌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맏형임을 자처하는 이 시점에서 노무현 호를 구제할 '신조선책략'은 무엇인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