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사·연출가·학생…세계 아마바둑 '직업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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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아마추어 바둑인들의 제전인 제1회 인천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가 인천 문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시작해 3일 우승자가 가려지는 이 대회에는 세계 58개국에서 1명씩 58명의 대표선수가 모였다. 유럽에선 31개국이 참가했다. 이들의 직업으로는 학생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수학자 등의 순이다. 의사와 엔지니어, 산악 안내인, 체스 선수도 있다. 우승은 한.중.일 3국이 다투고 있지만 참가 선수들의 다양한 면면과 바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더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의 챔피언 디에고 파에즈(28)는 살사와 탱고의 명인이자 연극 연출가다. 그는 매년 한번 열리는 전국적인 댄스 페스티벌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에콰도르의 바둑인구는 약 1백명. 일본 소설에 나오는 바둑 이야기에 끌려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둑은 완전한 게임"이라고 극찬하는 파에즈의 바둑 실력은 불과 2급. 그러나 그는 "한판의 바둑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이 담겨 있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 대회의 유일한 홍일점인 디아나 코스체기(19)6단은 헝가리에선 우승과 준우승을 거듭해온 유명한 강자다. 처음엔 체스를 했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체스보다 바둑을 둔다.

부다페스트의 헝가리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코스체기는 "바둑은 자유와 상상력의 게임"이라며 바둑을 알게 된 사실이 커다란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말한다. 또 "체스에서는 컴퓨터가 사람을 이겼지만 바둑은 이창호9단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프리카에서도 3개국이 참가하고 있는데 이중 멀고먼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서 마테리조 라조핀라베(21)라는 젊은이가 찾아왔다. 바둑 실력은 초단. 9세 때 여행 중인 오스트리아 국수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어 컴퓨터를 통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바둑인구는 불과 50여명. 라조핀라베는 이 나라에선 부동의 챔피언이다. 이번 대회는 스위스리그를 거쳐 4강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린다. 결승전은 한국의 김정환(명지대)아마6단과 일본의 히라오카 사토시(平岡聰)8단의 대결이 될 전망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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