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입약 차별할 소지 큰 제도" 한국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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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우리 정부가 9월 실시할 예정인 '건강보험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의 시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무역구제와 서비스 분과 협상에 불참했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에 맞서 상품.환경 분과 협상에 참여하지 않기로 해 이날 열릴 4개 분과의 협상이 모두 중단됐다. 나머지 15개 분과에서의 협상은 13일까지 마쳤다.

양국은 이날 협상 취소에도 불구하고 당초 일정대로 9월 초 미국에서 3차 본협상을 열어 쟁점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미국의 협상 불참도 협상을 깨겠다는 뜻이라기보다 협상 결과를 유리하기 이끌기 위한 '힘겨루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양측의 이견이 여전한 데다 국내에서도 FTA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향후 협상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 미국, 왜 의약품에 민감한가=미국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 약품의 선별 목록 방식(포지티브 시스템)이 미국산 약을 차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지티브 방식'은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 해도 모두 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보험 대상 약품 목록에 올리는 방식이다. 현재는 보험 대상이 아닌 약품 목록만 밝히고 나머지 의약품은 모두 보험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인정해주는 '네거티브 방식'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보험 적용 대상 약품을 선정해 미국산을 차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새 정책 실시 이후 가격이 비싼 신약들이 보험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값을 내려야 할 것이라는 미 제약업체의 주장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 한국 "협상 대상이 아니다"=한국은 이에 대해 "환자들에게 값싸면서도 효능이 좋은 약을 처방토록 해 건강보험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신약이 건강보험을 통해 엄청난 돈을 환불받는 것을 막기 위한 국내 정책이기 때문에 FTA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13일 "미국이 우리나라 제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들은 신약가정책이 철회될 경우 미국산 고가 약품의 처방이 늘어나면서 국민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한국 제약업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된 미국도 포지티브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자국 업계의 이익을 고려해 한국에는 도입하지 말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 약값 무엇이 문제인가=복지부는 현재 미국 등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감안하더라도 비싸다는 입장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 가격은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 7개국 평균가격에 환율.유통마진 등을 포함해 결정된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오한석 조직국장은 "미국의 약값이 호주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비싼 데다 미 보건당국의 '약가집(Red book)'의 공식 가격도 민간보험사 등의 실거래가보다 높아 값을 내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병기.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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