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초고에 있던 정부 비판 문구 빼고 日 규탄 초당적 협력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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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일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은 정부와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긴급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긴급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오전 일본 각의가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내린 직후, 국회에서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황 대표는 “이번 결정은 한·일 관계를 과거로 퇴행시키는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다. 양국 경제에 심각한 피해는 물론 동북아와 국제사회의 가치 사슬을 손상시켜 글로벌 경제에도 상당한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라며 “엄중히 규탄하면서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가 현실로 다가온 만큼 우리의 대응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화이트리스트 개정안 시행까지 3주의 기간이 있다. 외교적 해법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당은 국익과 국민에 기준을 두고 초당적으로 필요한 협력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일본은 7일 관련 개정안(수출무역관리령)을 공포하고 28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일본 정부의 심각한 외교적 패착이자 실책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이제부터는 극일(克日)을 위한 국내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적 해법으로 ‘분쟁조정협정’ ▶장기적 해법으로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제 철폐 등을 거론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제출한 일본 수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전액 수용하기로 어제 합의했다”고 했다.

이날 “정부가 (대응 방안을) 얼마나 준비해놓고 있을진 염려된다”(황 대표) 등의 발언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협력의 메시지가 더 많았다. 정부의 대응 방안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왔던 기존 톤에서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이날 나 원내대표는 발언 초고에 있던 정부 비판 메시지도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갈등이 총선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한 보고서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실제 발언하진 않았다. 또 “일본의 경제보복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상됐는데, 정부의 준비는 전무한 수준이었다. 청와대·여당은 정말 한심하다”는 부분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한국당 관계자는 “일본의 결정으로 당장 경제 위기가 가시화된 만큼, 정부 공세보다는 일본 규탄과 초당적 협력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당 내에선 정부·여당과 한목소릴 내는 게 부담스럽다는 속내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인해 반일감정은 더 거세질 테지만, 경제·외교·안보 피해 또한 극심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제1 야당으로 국익을 위해선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목소리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책임감이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강경 대응이 민주당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까지 나온 마당에, 우리가 여기에 한목소릴 내면 여당 프레임에 스스로 들어가는 꼴 아닌가"라며 "국익을 위해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제어해야 하는데, 이젠 ‘침착’이란 단어만 꺼내도 토착왜구가 될 판이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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