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훈련된 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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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수사로 말한다”는 검사의 ‘말’ 자체도 결코 가볍게 넘길 대상은 아니다. 퇴임사 없이 떠난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보며 그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 그가 부장검사급으로 대검찰청에서 일할 때다. 점심시간에 청사 10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는데 만원이라 탑승이 힘들었다. 일부가 상행선에 오르자 “우리도 올라갔다가 내려갈까요”라고 했더니 이런 답변을 했다. “대한민국 검사가 ‘꺾기’는 할 수 없제~.” 미소 띤 사투리 억양은 ‘검사 문무일’의 인상이 됐다. 사소한 일상을 굳이 ‘꺾기’(은행이 대출을 해주면서 일부를 예금으로 돌려 실적을 올리는 편법 행위)에 비유하고, ‘대한민국 검사’라는 주어를 쓰는 고지식한 ‘검사 개그’가 든든했다. 소박한 총장 퇴임에도 그런 소신이 반영됐을 것이다.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직후 한 검사의 술자리 하소연도 기억에 남는다. ‘싸가지 없는 집단’이라는 비난에 그는 항변했다. “우리는 ‘훈련된 늑대’다. 무서운 범인 앞에서도 발톱과 이빨을 감추지 말라고 국가의 훈련을 받았다. 누구 앞에서도 거칠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궤변이었다.

고검장을 지낸 한 검사는 반평생을 바친 검찰의 본분에 대한 고민 끝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했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수사의 지향점이자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검사의 자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26일 취임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기억될 것이다. 취임사에선 “‘국민과 함께 하는’ 검사의 정당한 소신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권력 실세의 비리가 없으면 좋으련만, 고뇌의 순간은 닥쳐올 것이다. 사람이 아닌 ‘헌법과 국민’에게 훈련된 늑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