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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이 부른 연례 파업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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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잘 팔리는 현대차의 신형 아반떼XD를 사려면 두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1만2000대의 주문량이 밀려 있다. 올 5월 신차 라인에 근로자 투입 인원 규모를 놓고 노사 간 줄다리기를 하면서 생산 차질을 빚은 데다 파업까지 겹친 결과다.

아반떼 출고가 늦어지자 지난달 르노삼성의 SM3가 준중형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현대차 노사는 "아반떼를 살 고객은 두 달 이상 기다려도 산다"며 손을 놓고 있다. 노조는 원화 환율 급등으로 경영 사정이 나빠졌는데도 파업을 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 경영진도 파업을 대하는 자세가 그다지 치열해 보이지 않는다. 12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업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현대차는 파업을 염두에 두고 매년 7, 8월의 생산량을 다른 달보다 줄여 잡는다. 현대차는 2004년 이후 국내 자동차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 국가에서 한 업체가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 도요타의 내수시장 점유율도 40% 수준이다. 그것도 1990년대 말 맞수인 닛산이 몰락한 결과다. 푸조.시트로엥.르노 3개사가 65%를 넘게 점유하는 프랑스도 한 개 회사가 50%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차의 파업은 '시장 독점이 부른 병'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올 상반기 수입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4% 선을 넘었다. 하반기는 5%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5% 벽이 깨지면 강한 탄력을 받아 10% 선은 훌쩍 넘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수입차 가격이 싸지고 국산차보다 기술과 품질이 좋아 수입차를 사는 게 아니라 현대차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발길을 옮긴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도요타는 이익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철저히 내수 시장을 지킨다. 혼다는 일본에선 매년 적자를 내면서도 10%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내수시장이 튼튼해야 해외 사업에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현대차 노사의 '파업 불감증'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을 수입차에 내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